일부 비서관ㆍ행정관 향후 진로놓고 '한숨'

"2월25일은 주권(主權)을 회복하는 날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급 참모는 내달 25일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이후 자신의 행보에 대해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그동안 대통령 참모로서 극도의 긴장과 피로를 떨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게됐다는 우회적 표현인 셈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권 인수작업이 한창인 요즘 이 대통령의 참모들은 퇴임 이후 '역할 모색'이 한창이다.

고위급 참모인 대통령실장과 각 수석비서관들은 귀향하거나 재충천을 위한 여행·휴식, 저술 작업, 현업 복귀 등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질 예정이다.

이에 반해 중·하위급 참모인 비서관·행정관들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각 부처에서 파견된 '늘공(늘 공무원)' 출신들은 친정으로 원대복귀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비공무원 출신인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새로운 영역확보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강이 끝나는 산 너머로'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펴낸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시집에서 밝힌 대로 고향인 경남 거제로 내려 갈 예정이라고 한다.

하 실장은 시집 첫머리에서 "SBS에서 사장을 끝으로 36년 동안의 방송사 일을 마감하고 청와대 경험을 했다"면서 "달빛을 좇아 고향에 돌아갈 날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대기 정책실장은 공직생활 중 틈틈이 해둔 메모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저술 작업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책에서 정책 의사결정 과정들을 케이스로 삼아 소상하게 담고 잘한 정책과 잘못한 정책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호위대장'격인 어청수 경호처장은 건강부터 챙길 계획이다. 어 처장은 지난 1년6개월 동안 경호처장을 맡으면서 심신이 많이 지쳤다는 후문이다.

최금락 홍보수석비서관은 퇴임 이후 부인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변호사 출신인 정진영 민정수석비서관도 다시 현업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을 내비치고 있다. 천 수석은 평소 "퇴임하면 좋아하는 낚시를 하면서 세월을 낚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연홍 노동복지수석비서관과 이동우 기획관리실장, 김명식 인사기획관, 장다사로 총무기획관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향후 역할을 구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은 자신의 '주특기 분야'인 녹색성장과 미래비전과 관련한 저술 활동과 함께 이를 이론화하려는 작업을 병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들 고위급 참모는 퇴임 이후 이 대통령과 꾸준히 만나기로 했으며, 이 대통령이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진 재단 설립에 참여하거나,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정리·전파하는 활동을 벌인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비공무원 출신 비서관·행정관 대부분은 아직까지 뚜렷한 진로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비서관·행정관들은 공공기관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했다가 박 당선인이 지난해 말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사람을 보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 이후 뜻을 완전히 접었다.

비서관 중에서는 오랜 기간 이 대통령을 보좌해온 임재현 제1부속실장은 이 대통령 퇴임 이후를 보좌할 법정비서관으로 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관측이다.

'청와대의 입' 역할을 해온 박정하 대변인은 해외에서 공부를 하면서 '내공'을 쌓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종현 춘추관장은 잠깐 휴식을 취한 뒤 향후 활동을 구상할 예정이다.

김영수 연설비서관은 당분간 대통령의 말과 글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향후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윤 국정홍보비서관은 재단법인 '한국지도자아카데미' 산하에 어린이 경제리더십 과정을 개설해 어린이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또 청와대 인근에서 '가업'인 냉면집을 차리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길호 온라인 대변인은 대학 전공과 언론사·청와대 근무 경험을 살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관련 창업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비서관·행정관들은 '청와대 잔류'를 원하고 있는 눈치지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일부는 벌써부터 생계유지 걱정을 하면서 구직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국정 최고기관에서 폭넓고 깊이 있는 정치·행정 경험을 통해 전문성은 물론이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며 합리적 대안을 찾는 노하우를 쌓은 인재라는 점에서 이들의 '비자발적 실업'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한 선임 행정관은 "요즘 청와대 내부에서는 내달 25일 이후 각자의 인생항로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놓고 고민이 가득하다"면서 "정권 인수인계 작업이 끝나면 구직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