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동네 상을 당했는데 부고(訃告)를 돌리라고 한다. 이에 장산이가 이장에게 볼먹은 소리를 한다. “이장, 요새 판에 무슨 부고장을 돌리라는겨. 행상이 동네
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망인은 이십 리 밖 장례식장에서 곧바로 선산으로 간다는데
. 근 그렇다 치더라도 상가의 일가친척이나 이웃마을의 친지들한테는 전화를 걸든가, 그 흔해빠진 핸드폰 문자를 누르든가, 거 이장 자네 집에 있는 컴퓨터루 이메일인가 뭔가를 보내서 알리면 되지 무슨 쌩뚱맞게 부고장여 부고장이.” “아니, 여태까지 잘해오다가 자네야 말루 생뚱맞게 왜 그랴, 어디 부고장을 돌리라구 그랬나 써놓은 부고장을 우체국에다 부치고 오라는 거지. 시방 부치면 내일꺼정은 들어가잖여. 그게 더 쉽지 자네가 그 많은 집집에 주소 찾아 이름 찾아 전화 걸구 문자 날리구 이메일 보낼 수 있겄어. 그렇게 할 수 있거들랑 그렇게 해봐 어디. 난 어디까지나 자네가 담당이니께 하는 소리여.” “담당, 그놈의 담당은 쉰에 들어 섰는데두 담당여?” “이제 겨우 쉬흔 넘기구 뭘 그러나 자네 요새두 하룻밤에 두세 번씩 이불 들썩인다며 다 알어. 정 그렇게 담당 면하려거든 저 발바리 노인처럼 후계자를 하나 정하든가.” “이 사람 시방 누굴 을렀다 추었다 하는겨. 누가 하룻밤에, 후계자를, 내 말문이 막혀 여기서 더 말을 말아야지. 알겄네 알겄어.”

지난날엔 경사(慶事)와 상사(喪事)큰일이라 하여 동네일로 여기고 동네사람들이 각기 분담을 했다. 이중 상사(喪事)는 사흘장(三日葬)을 치러야 하는 마당에 급히 외지나 이웃마을의 친지들에게 이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이 부음을 맡아 돌리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때는 동네에서 남의 산이나 뫼를 맡아 지키는 사람을 산직(山直) 산지기라 했는바 이가 동네상사 시엔 부고장을 전적으로 맡아 돌렸다. 지금 이장이 거명한 팔랑개비 노인이란 바로 그 당시 산지기였던 천수 씨다.

이제는 팔십 고령으로 산허리 건밭머리에 마나님 보내고 홀로 지내는데, 젊었을 적에는 어찌나 발 빠르게 그 숱한 부고장을 돌리느라 돌아쳤던지 팔랑개비라는 별호가 붙었던 것이다. 그의 부고장 돌리기 역사는 그가 총각이었을 적부터 기운이 쇠잔해진 환갑 직전까지이니 족히 45년여가 된다. 그가 현역에서 은퇴할 때 동네에서 그의 후계자로 누가 마땅하겠는가를 물었더니 그는 서슴없이 장산이를 지목했다. 걸음 재지, 본동은 물론 이웃 타동의 집집사정 잘 알지. 이 두 가지면 되지 인물 잘 나고 성품 좋은 건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이리해서 장산의 부고 돌리기 역사는 시작되는데, 그는 출정 첫날을 즈음해서 선배 천수 씨를 찾아가 조언을 듣기로 했다. “내 아들자식 없고 여식만 있어 대를 잇지 못하고 아직 새신랑을 면치 못한 젊은 양반한테 떠맡긴 것 같아 미안하오. 내 일러줄 게 뭐 있겠소만, 이건 우체부 편지 돌리기완 달라서 기쁜 소식도 아니고 오히려 부정 타는 것이라 하여 문안까지 들여 놓는 걸 꺼려하니 대문문고리나 삽짝 틈새에 끼워놓기만 하고 바로 돌아서기만 하면 되오. 또 한 가지는 하루에 다 돌려야 하니 발에서 불이 확확 나야 할 것이오. 이 두 가지요. 잘해 보소.” 이후 쉰이 갓 넘은 오늘날까지이니 햇수로는 30여 년이 되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세상이 많이도 달라져서 전화, 휴대폰, 이메일 등이 대신해 주기도 하고 여기에 우편통신이 더욱 발달해 우체국에 갖다 주면 이튿날이면 들어가니 일일이 발품 팔아 외지나 이웃동리 집집에까지 가지 않아도 되어 여간 수월해진 게 아니다. 그런데도 장산은 짜증이다.

이장 앞에서 볼먹은 소리를 내면서도 장산인 부고장 보따리를 우체국에 풀어 놓고 돌아오면서, 45년여나 군소리 없이 묵묵하게 버텨낸 선배 팔랑개비 노인을 문득 생각하고 산허리 건밭머리로 발길을 놓았다. 동네상사엔 빠지는 일이 없는 선배가 오늘도 눈에 띄질 않았던 것이다. 딸자식 벌써 출가하고 안노인 없이 혼자 외로이 살고 있으니 참 딱한 일이다. 그간 무슨 일은 없는 것인가? 그런데 이런, 이런! 팔랑개비 선배는 차디찬 방안에 걸레처럼 널브러져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장산인 바람벽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딸의 휴대폰번호를 부리나케 눌렀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버지한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녀!”

그날로 경기도 산다는 딸이 바람같이 와서 승용차로 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모시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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