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신 준 청양군 목면 부면장

요즘 박범신의 소금이라는 소설을 즐겨 읽고 있다. 소설에는 선명우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십년 넘게 근무해 온 음료회사 상무다. 집에서는 여왕같은 아내의 그늘에서 묵묵히 딸 셋을 뒷바라지 해 온 시종같은 사람. 그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 볼 기회를 갖는다. 그의 삶은 가정의 행복이라는 깃발아래 징집된 전투병이었다. 명령만 떨어지면 가정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기세로 살아왔다. 인류라는 종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이 심어놓은 본능에 따라 작동하는 삶이었다. 개미의 생존을 위해 일개미가 여왕개미를 섬기듯 DNA에 각인된 프로그램대로 살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감은 늘 희미했다.

그는 큰 병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현대인의 삶을 거미줄처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의 핵심은 개인(특히 가장이라는 이름의)과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 자본주의 시스템간의 관계다. 그는 오랜 기간 자본중심의 불가사리 같은 거대한 체제에 기생해 그 몸뚱이에다가 빨대를 꽂고 죽어라 빨았으나, 넷이나 되는 처자식이 그의 몸뚱이에 빨대를 또한 꽂고 있었으므로 그가 빨아올리는 꿀은 늘 턱없이 모자랐다. 그 체제는 그에게 약간의 꿀을 제공하는 대신 그의 영혼에 송두리째 차압딱지를 붙였다. 그리고 그 체제는, 그를 계속 노예 상태로 두고 부려먹기 위해 그의 후방에 있는 처자식을 끊임없이 부추겨 그가 빨아오는 꿀을 더 재빨리 소모시키도록 획책했다. 회사의 매출이 10으로 늘어나면 가족들의 소비욕구는 어느새 100이 되었다. (중략) 그는 그 트랙에서 벗어난 후에 겨우 깨달았다. 그는 지난날의 삶을 수치스럽게 느꼈다. 그것은 한마디로 불안한 부랑(浮浪)의 도망자와 같은 삶이었다.

그는 결국 그토록 지키려고 애썼던 결혼이라는 굴레를 빠져 나온다. 우연한 사고로 인한 불가사의한 탈출이었다. 작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결혼을 벗어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설정을 택했을 것이다. 그는 도망자의 삶을 빠져나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더불어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한다.

예전의 삶이 부랑이었다면 그 즈음의 삶은 유랑이었고, 자유였고, 자연이었다. 본질적인 단맛이기도 했다. 그는 그 자신이 강물이 됐다고 느꼈다. (중략)사랑이, 자유가 왜 강물이 되지 못하겠는가. 겉으로는 흐르는 삶이었지만 속으로는 진실로 머물렀다고 자주 느끼기도 했으며, 그래서 그는 머무르고 흐르는 강이 된 자신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박범신 소금’-

물론 현실의 결혼에서는 그런 불가사의한 탈출방법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아직 인간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대안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혼 안하는 비혼의 삶이 늘어나고 있지만 자발적인 것만도 아니다. 대부분 덜컥 결혼하고 수없이 갈등하며 살아가는 게 보통사람의 삶이다.

소설은 아직 연재중이라 작가의 의도가 모두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무리 소설속이라 한들 인간의 결혼문제를 무 자르듯 해결하는 해법같은게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해온 노 작가는 그 딜레마를 줄여주는 지혜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지 않고 서로의 삶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함께 가되 홀로 걷는다. 히말라야에 15번이나 다녀왔다는 그가 어느 방송에 출연해서 말한 트레킹의 지혜다. 혼자 길을 걷는 건 아무래도 외롭다. 동행이 필요하다. 하지만 함께 걸으면서 계속 얘기만 하면 홀로 있을 수 없으니 불편하다. 결국 가끔 괜찮으냐고 물으며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결혼 30년차. 아내와 살다보니 친구처럼 우정만 남더라는 이야기도 했다. 결혼의 지혜도 히말라야 트레킹과 같지 않을까. 서로 지켜보면서 도란도란 함께 걷는 여정이 좋은 관계를 가꿔가는 비결 아닐른지. 함께 가되 홀로 걷는다. 관계를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칼릴지브란도 결혼에 대하여 같은 조언을 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대들 사이에서 하늘 바람이 춤출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랄 수 없나니.

관계의 비밀은 거리의 미학이다.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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