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자 수필가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의 시조다. 1500년대에 지어진 시조이니 500년 전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하긴 격세지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의 효()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금도 짐을 들어주는 기특한 청년이 왜 없겠는가. 자리를 양보하고 길을 가르쳐주고 하는 젊은이들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만치 우리의 효사상은 면면히 이어 오고 있고 우리민족 정신세계의 주축이 되어 왔다.

세상이 변하여 고령사회가 되다보니 노인이 너무 많아서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늙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늙지 않을 사람도 아무도 없다. 우리는 2012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총 인구의 11.8%라고 한다. 국제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고령화가 한창 진행 중인 사회다. 2018년께 노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추정될 만큼 노인 인구의 증가속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준비는 되어있지 않으니 노인들은 사각지대로 내 몰리는 형편이다.

노인들 중에 독거노인이 이미 100만명을 넘었고, 2030년에는 233만명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독거노인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전통적인 효도관이 붕괴되면서 급속한 핵가족화가 가속화 되었고 혼자 사는 노인이 늘어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식에게 노후를 의존하던 과거의 효 개념과 노인부양 의식은 약화되었으며 현대 사회 실정에 맞지 않으니 자식이 있어도 모시기 어렵고, 부모들도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다보니 독거노인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모든 독거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가난을 이기고 자식 치다꺼리 하다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으니 어쩌겠는가. 건강이 안 좋아지고 황혼의 외로움으로 인한 고독감이 문제다. 지켜보는 이 없이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고독사(孤獨死)라는 신조어 까지 생겨나지 않았는가. 혼자 살다보면 우울증이 생기고 병마에 시달리다보면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부산에 있는 한 다세대주택에서 6년 전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이렇듯 무관심한 사회라는 것이 충격이다. 숨진 지 보름 만에 또는 한 달 만에 발견 되는 독거노인의 고독사 소식이 잊을 만하면 들려오니 참담하고, 앞으로 그런 일은 더 늘어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지난해 전국에서 4000명 가까이 되는 노인이 실종 되었다고 한다. 제 부모를 모실 마음도 여건도 안 되는 자식들에게 무작정 기대할 수만은 없다. 이제는 국가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인문제를 제도화하여 자식도 부모도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노후가 행복해야 건강한 국가가 아니겠는가.

한술 더 떠서 나약한 노인을 등쳐먹는 사기범까지 외로운 노인을 골라서 노린다니 노인들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순진한 노인들에게 선물공세를 펴서 현혹시키고 공연을 보여주며 환심을 산 다음에 약장수로 둔갑하여 비싼 값에 파는 사기행각 등 교묘한 수단으로 노인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니 노년의 고독감을 악용하는 인간이하의 행위다. 보이스피싱도 노인들을 노린다. 이런 사기범들에게는 법을 강화하여 중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 없을 터인데 제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이런 치졸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먹고 산단 말인가. 뼈 빠지게 길러놨더니 그 은공은 모르고 제 부모를 해치는 격이다. 그들도 미구에 늙은이 소리를 들을 터인데 말이다.

청주시가 노인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청주시독거노인지원센터를 건립하고 맞춤형 예방시스템을 운영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노인 단독가구 현황 분석을 통한 노인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고 홀로 사는 노인 선별검사와 사후관리, 자살예방시스템 구축, 민관협력체계구축 등을 추진하고 모든 홀로 사는 노인의 데이터 관리와 노인 자살 예방 사업을 총괄토록하고 독거노인을 24시간 맞춤형 복지서비스로 연계하도록 할 계획이라니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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