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 침례신학대 교수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딱 너같은 딸 하나만 낳아봐라!”
엄마와 딸의 끔찍하게 신비한 관계. “엄마와 딸 사이는 미워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아픈 곳을 할퀴고 미안해하고, 울고불고 통곡도 마다않는다. 눈물이야말로 엄마와 딸 사이에 핏빛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격렬하게 싸우고, 그리고 격렬하게 몸을 다 바쳐 사랑한다”고 신달자의 ‘엄마와 딸’은 적고 있다. 엄마는 엄마의 딸이고, 딸이 자라 엄마가 되므로 이 세상에 한 번도 딸 아니었던 엄마는 없으리. 이 특별하게 평범하고, 끔찍하게 아름다운 관계, ‘갈등과 동질감을 거듭하는 미묘한’ 엄마와 딸 이야기는 어쩌면 세상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신달자의 ‘엄마와 딸’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해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맺는다. 육녀 일남의 딸 많은 집 딸이며, 평생을 눈물과 슬픔 속에 살다가신 엄마의 이야기, 딸들을 길러낸 이야기까지. 결혼 구년만에 남편이 생일 점심상 앞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이십 사년 동안 병수발, 시어머니 병수발과 혼자 힘으로 세 딸을 길러내고 나중에 자신의 암 투병까지 고통스런 삶을 두 여성, 엄마와 딸 덕택에 절망적인 일상을 희망으로 바꾸며 살아낼 수 있었다고 기술한다. 엄마를 가진지 70년, 엄마로 산지 45년의 기록이다.
딸로서 “엄마를 생각하면 고향, 어린시절, 밥, 가족, 눈물, 따뜻함, 포옹, 사랑, 무조건의 믿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애잔함과 마음 저림이 함께 오는 것도 엄마라는 단어” 인데,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지 모르겠어요. 단 한번도 고분고분 말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안된다는 것은 정말 다 아닌 것인데 엄마 말을 귓등으로 들어 제 인생이 더 절뚝거렸다고 생각해요”라고. “내가 엄마를 가진지 70년. 엄마 이름 하나로 가슴 따뜻했던, 가장 외로울 때 엄마 한번 부르고 힘 내어 일어섰던, 나의 엄마, 지금도 그 이름으로 나는 아침에 허리를 펴고 일어선다”고.
세 딸들을 향해서는 “사랑하는 내 딸들아. 그래, 한 여자의 생이 저물고 한마디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나는 너희들을 향해 딸들아.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을 것 같아. 그런 날 내가 너희 이름을 각각 부르지 않더라도 이해해라. 이름을 부른다면 너희들 가족 이름을 다 불러야 하는데 아마도 힘이 없을지 몰라. 딸들아 라는 말 속에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가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부탁한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고백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하는지.
가끔은 너는 틀렸다고
깊은 상처를 서슴지 않으며
이 아름다운 인연에 금을 그었다
용서해라 나의 딸들아
살아보니 삶은 힘들고 외로웠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며
너희들의 이름을 불렀다
너희들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햇살이 나타나고 나는 아프지 않았다
살아 보니 이만한 사랑이 없었다
더러 외로워 더러 막막해서
한마디 원망을 하고 싶거든
나의 두 손에 넌지시 던져라
너희들 어둠은 내가 온전히 받아
저 별들에게 전해 주리라
자식 노릇도 부모 노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심란스러움을 새해 앳된 시간들 앞에서 점검이라도 열정적으로 하다보면 이래저래 가슴 벅찰려나. 엄마를 가진지 몇 년, 엄마로 산지는 몇 년이더라? 하나는 받는 삶, 하나는 주는 삶으로 단순하게 놓고 보아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예의없었으므로 시답잖고 민망스럽기만 한데. 고마울수록 무례해온 덜떨어져온 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