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결국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했다. 국회인사청문회가 심사경과보고서(청문보고)를 채택하기 위한 회의조차 열지 못한 것이다. 인사청문특위는 24일 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한 여야합의를 시도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활동종료를 공식 선언하고 말았다. 헌재소장을 임명하는 길은 인사청문회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국회인준에 맡기는 방법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해 표결처리하는 방법이 있지만 첫 번째 경로는 이미 막힌 것이다. 두 번째 국회의장 직권상정도 인사안건의 직권상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의장의 입장이어서 이동흡 후보자의 국회 인준은 일단 불가능해 진 상태로 보인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의 지명과 의혹제기, 인사청문회를 통한 소명의 과정은 한마디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은 30가지가 넘었다. 위장전입에서부터 관용차의 사적 이용, 석연치 않은 부부동반 해외출장, 특정업무경비 횡령 의혹까지 논란이 됐다. 심지어 야당의 한 의원은 이 후보자를 놓고 생계형 권력주의자란 말까지 할 지경이었다. 이 후보자는 청문과정에서 항공권 깡같은 사안에서는 정면으로 반박했지만 민감한 사안에서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일관성 없는 답변을 늘어놓아 스스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기도 했다.

특히 청문회 막판에 쟁점으로 부각한 특정업무경비와 관련해서는 관례라는 답변 외에는 이렇다할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특정업무경비라는 것은 각 기관의 수사, 감사, 예산, 조사 등 특정업무수행에 드는 실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급하는 공무원 경비 중 하나로 정부의 예산집행지침은 특경비 사용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는 판이해 특경비는 일종의 쌈짓돈처럼 사용돼 왔다. 이 후보자도 이런 관례를 들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개인 돈과 공금을 뒤섞어 초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한 사례 등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이제 시행에 들어간 지 10년을 조금 넘긴 인사청문회는 아직도 검증 기준과 원칙을 써내려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식의 신상털기 청문회라면 세속에 발을 담근 인간 중에는 검증을 통과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또 청문회가 공직자의 철학이나 자질, 능력을 살피는 자리가 되지 못하고 의혹 제기와 정치공세의 자리로 변질됐다고 성토하기도 한다. 일면 타당성이 있는 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도덕성이 왜 가장 큰 쟁점이 돼왔으며 국민들의 관심을 모아왔는지 성찰한다면 그렇게만 판단할 일은 아니다. 경위야 어떻든 청문과정의 공방은 고위공직자의 직업윤리기준과 도덕성이 어때야 하는지 거듭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고위 공직을 맡을 국가지도자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도덕성을 갖춘 인물이기를 바란다. 또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은 국민의 존경을 배경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바람도 크다. 이번 인사청문회의 진통은 그런 목표에 다가가는데 쓰일 교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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