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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천천히
조금씩 천천히
  • 동양일보
  • 승인 2013.01.2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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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윤 청원군수

간혹 관용차 대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경우가 있다.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있는 관사에서 군청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나를 알아본 주민들이 깜짝 놀라며 “군수님이 버스도 타유? 기사 딸린 차도 있을 텐데 왜 버스를 타유?”라고 의아해 하며 인사를 건네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높으신 양반들도 대중교통 타 봐야 되지. 암, 그렇고말고.” “잘 하는 거유, 앞으로도 계속 버스 타슈!”하며 격려를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에는 “우리 집 앞에 길이 안 나서 너무 불편한데, 군수님 빽으로 길 좀 내 주쇼!”라며 농 섞인 민원(?)을 제기하는 분을 만나기도 한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반갑다며 환하게 웃어주시고 주머니를 뒤져 박하사탕 한 개 쥐어주시곤 무척 흐뭇해하신다.

이렇게 출근길에 주민들과 만나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그런 날은 신기하게도 하루 종일 발걸음이 가벼운 것을 느낀다.

주민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은 덕분이라 생각한 나는 얼마 후 농가를 기습적으로 방문해 보기로 했다. 하루는 관계 공무원들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새벽 5시 해가 아직 뜨기도 전 어느 이장님 댁을 찾았다.

새벽 작업에 한창이던 이장님은 점퍼 차림의 나를 보고는 “뉘시오?” 한다.

“이장님, 저 군수입니다. 이종윤이에요.”라고 하자 토끼같이 놀란 눈을 하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극구 만류하는 이장님을 설득해 제초작업을 돕고는 이장님 댁으로 가 요즘 힘드신 일은 없는지, 생활은 어떠신지 여쭙고는 아침도 맛있게 얻어먹고(?) 출근했다.

이날 역시 하루가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신이 나서 보냈다. 그 후 일주일이면 1∼2일은 ‘깜짝 방문’을 벌였는데 농가의 생생한 목소리도 듣고 군정 추진 방향도 잡을 수 있어 매우 의미 있었다.

지난 2010년 7월 군수 취임 때 “앞으로 군수실의 벽을 허물겠다”라고 하자 반응이 그저 그랬다. 다들 인기를 끌려는 사탕발림이겠거니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군수실의 ‘벽’을 정말 허물었다. 벽을 허무는 공사를 감행했고 비서실을 통해야 군수실로 갈 수 있었던 구조를 확 바꿨다. 군수를 보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쉽게 나를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랬더니 주민들이 군수를 어려워하지 않고 찾아왔고 하소연도 할 만큼 마음의 벽이 낮아지게 된 것 같다.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는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청원군은 내년 7월이면 청주시와 ‘통합 청주시’로 하나가 된다. 다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것, 기관?단체가 하나가 되는 것, 행정기관이 하나가 되는 것 모두 험로(險路)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큰 꿈을 꾸고 더 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를 지혜롭게 지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벽을 허무는 게 우선이다. 마음의 벽부터 낮추고 그 벽이 완전히 사라져야 진정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벽을 허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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