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영천은 생질녀한테서 문자를 받았다. “외삼춘 어떡해, 아버지가 결혼을 한 대. 엄마 49제가 불과 10일 전이었잖아 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밑도 끝도 없이 여기까지다. 그야말로 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더구나 생질녀는 제 결혼날짜가 보름도 안 남아 있는 상태다.

열흘 전에 누이 49제에 다녀왔는데 그때, “처남, 처남, 누나 불쌍해 누나 불쌍해, 고생만 하다 고생만 하다…그래서 좋은 데로 가라고 사십 구제를 이렇게 내 힘껏은 차린 거야.” 장례 때도 반실성한 사람이 돼서 그렇게 애통해하더니, 이번 49제때도 반정신나간 사람이 되어 허둥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왜 안 그렇겠어. 내외가 보통 사이였어야지.” 하고 쯧쯧 혀를 찼다. 매형은 처음 누이와 연애할 때 장인 될 어른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건달 같은 놈이라고 문전박대하는 걸 이틀을 꼬박 삽짝 밖에서 무릎 꿇고 농성하고, 누이는, 이러한 호랑이 아버지 몰래몰래 목숨 걸고 신랑감에게 방석 던져 주고 목 축일 물 사발 전달해서 가까스로 허락을 받아냈었다. 이러한 둘의 사이라는 걸 동천은 중학생 때 자신의 눈으로 생생히 보아 기억한다. 둘이 결혼을 해서는 잠자리 계획대로 3남매를 두었고, 살림도 둘의 노력으로 차츰차츰 일어났다. 그런데 그 누이가 집 대문의 지붕 난간에서 화분 정리를 하다가 그만 실족해서 아래로 떨러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졸지에 가버리고 말았다. 그때 매형이 어떻게나 짐승처럼 울부짖던지 당장에라도 쌍 초상이 날까봐 영천은 자신의 설움은 잊은 채 매형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이걸 보고 주위 사람들은 “저저저 저 사람, 간사람 못 잊어 생전 홀애비로 늙을껴.” 했다. 그랬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영천은 생질녀에게 곧바로 휴대폰을 눌렀다. “아버지가 요새 확 달라졌어 외삼춘, 갑자기 새엄마라고 데려왔는데 그게 말이 돼. 우리 삼남매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어.” “네 혼사는?” “예정대루 해야지 뭐, 엄마일 땜에 미룬 거잖아.” 영천의 마음이 착잡하다. 매형이 언제까지 혼자일 수는 없지만 이건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닌가. 이에 배반감 같은 게 일어나니 매형이 괘씸해졌다.

그리고 2주일 후, 영천은 매형의 이름으로 보낸 생질녀의 청첩장을 받고 식장으로 갔다. 매형이 반갑게 손을 잡으며 맞는다. “처남 왔구먼 왔구먼, 고마워 고마워.”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눈을 맞추지도 못하곤 신부 쪽 부모석으로 갔다. 한데 그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새엄마는 저쪽 손님들 틈에 끼어 있어요.” 막내생질이 가리키는 데를 보니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누이또래는 돼보였다. 먼발치라 자세히는 볼 수 없으나 몸태며 두형이 생전의 누이의 모습 흡사하다. “피붙이도 일가붙이도 아무도 없다는데 멋쩍다며 오늘은 아버지하고 같이 안 앉는다는 거예요.” “니들한테 잘해 주냐?” “아직은 서로 서먹서먹하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돌아가신 엄마 비슷한 데도 있어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영천은 마음이 심란해 시무룩이 집동네로 돌아오는데 동네어른들이 경로당으로 들어가다가 영천을 보고 한마디씩 한다. “누이 없는 생질녀 시집가는 거 보니 속이 그러하제. 그래 움누이는 보았는가?” “움누이요?” “그려, 매형이 누나 보내고 새로 들여 논 후실을 자네 편에선 움누이라 하는겨. 누나 자리에 대신 들어온 사람이니 누나는 누나 아닌가.” “그리유?” “그나저나 자네 매형, 삼년상은 못 치르더래두 백일탈상은 하구 갔으면 좋을 걸 그것 땜에 자네 맴이 좀 언짢을껴.” “상처하믄 뒷간에 가서 혼자 웃는다더니 여하튼 이왕 간거니께 자네는 죽은 누이 다시 생겼다 치구 누이 대접으루 움누이한테 잘해 주게.” “그려, 저 움딸하구 같이 사는 대춧골할멈 좀 보게 얼마나 알공달공 잘 사는가!”

대춧골할머니가 딸집에서 살다가 노년에 딸을 앞에 보내고 나니 이제 사위는 딸 없는 사위가 돼서 여간 막막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사위가 새장가를 드니 더욱 바늘방석이 돼서 신세 한탄을 했는데, 새로 딸 대신에 딸 자리로 들어온 사위의 후실을 ‘움딸’이라 하거니와 그 움딸이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얼마나 상냥하고 곰살갑게 대해 주는지 지금은 얼마나 맘 편히 지내는지 모른다.

영천은 집으로 가는 길에 대춧골할머니네를 들렀다. “그 움딸이라는 게 말여, 죽은 딸의 자리에 새 움이 터서 생겨난 딸이라는 말인가벼. 그러니 영락없이 다시 생겨난 내 딸이고 보면 사랑스럽고 귀하제. 안 그려? 저도 그렇게 여길 테고”

영천은 조만간 움누이를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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