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몇 년 전 대학에서 내 수업을 듣다 친하게 된 다혜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내 제자다.

당시 선정된 도서를 읽고 주어진 토픽에 대한 답을 준비해 와 수업시간에 서로 의견을 나누는 문학강좌였는데 다혜는 행정학도로서 문학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던 학생이었다.

똑 부러지는 글 솜씨도 일품이려니와 예쁘고 발표도 자주해 자연히 내 눈에 띠게 되었다.

수업이 끝난 어느 날 그녀는 내게 다가와 자신의 멘토가 되어 달라는 청을 했다. 그 이후 다혜와 나는 사제지간을 떠나 친구처럼 혹은 딸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아들 둘만 두어 딸이 없던 나는 젊은 시절 나이 드신 분들이 날 더러 아들만 있어 나중에 외롭겠다는 말을 자주 하던 심정을 절감하던 터였는데 다혜를 만나며 딸을 둔 엄마들의 행복감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글 솜씨가 뛰어난 다혜는 틈나는 대로 쓴 단편소설을 가져와 모니터링을 부탁했고 함께 식사를 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취직을 해 첫 월급을 타 내게 식사 대접을 하기도 했고 여성용 술이라며 산사춘이라는 과실주를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 뒤로 나는 산사춘 애호가가 되었다.

한창 예쁜 나이이기도 하지만 미모가 뛰어난 다혜는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딸이냐고 물으며 참 곱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화사하고 항상 웃는 얼굴인 다혜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딸 가진 부모들을 진정 부러워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함께 피부 관리실에 가보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기도 하고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다.

스파게티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와 이태리 레스토랑엘 가기도 하고 새로 생긴 화덕구이 피자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후배들을 만나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도 다혜와 함께 가는 적이 있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혜가 끼면 분위기가 더 화사해지는 것 같았다.

가끔씩 다혜는 작은 선물을 사오곤 했는데 하나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카모마일이나 페퍼민트 같은 허브차, 달콤하고 귀한 맛을 지닌 쿠키, 블루베리 등 내 취향을 정말 잘 알아 맞췄다.

어느 날은 집에서 만든 만두나 고추 절임 등을 가져오기도 했고 한 번은 오랜 만에 떠난 여행지에서 그곳 특산품인 모주를 사와 날 놀라게 했다.

캔으로 된 최신형 모주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인데 조금씩 아껴 먹어 아직도 한 캔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일 년 직장 생활하며 모은 돈으로 중고차를 샀다며 타고 왔는데 남자들이 즐겨타는 일명 짚차를 타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참 기특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 많지 않은 월급을 아껴 차를 사고 저축도 제법 하는 모양이었다.

웨딩관련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작년에 치른 아들 결혼식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들 며느리가 모두 외국에 있어 제반 준비를 내가 해야 했는데 그녀가 함께 동행하며 웨딩 스튜디오도 추천해 주고 한복을 고르는데 센스 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딸 같은 그녀의 도움으로 난 아들 결혼 준비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직장 생활 몇 년차인 그녀는 어느 날 삶에 변화를 갖고 싶다며 그동안 번 돈으로 외국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와 동행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이런저런 여행지를 물색하다가 차라리 일 년 정도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떠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엔 당황하던 그녀가 부모님과 상의를 한 뒤 외국생활을 해 보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큰애가 아직 밴쿠버에 살고 있고 내가 6년 넘게 살던 곳이라 이런 저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고른 도시였다.

그 이후 그녀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고 인터넷이나 나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있다. 며칠 전에는 동네 새로 생긴 스파게티 집에서 다시 만나 다시 캐나다 생활에 필요한 얘기를 해 줬다.

그녀는 전에 비해 활기찬 모습으로 치밀하게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뒤면 그녀는 밴쿠버로 떠난다.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낯선 문화와 부딪치며 자신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다. 현재 그녀 못지 않게 내 마음도 한껏 부풀어 있다. 그녀에게 펼쳐질 미래가 한없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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