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일 극동대 교수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실패를 맛보지 않고 승승장구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에게나 실패는 있다. 이들의 마음에는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으면하는 절절함이 공통적으로 끓어오른다. 지난주 금요일 방송이 끝난 KBS2TV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은 이런 심정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가수의 꿈을 안고 데뷔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노래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928일 첫 방송에서는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온 본선 진출자 31명의 면면이 공개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여성 파워 로커 리아는 온갖 루머와 스캔들, 이혼으로 인한 10년 동안의 공백기를 깨고 돌아왔다. 혼성그룹 거북이의 메인보컬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팀 내 폭행과 불화로 강제하차 당했던 임선영의 모습도 보였다. 깜찍한 여중생들로 이루어진 최연소 힙합 걸그룹 지피베이직 멤버였던 정혜원과 변승미도 나이답지 않은 실력으로 본선에 합류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어릴 때 부모의 버림을 받은 신성훈은 보육원 생할을 하면서 당한 상습폭행으로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지경이었다. 가수로 데뷔했으나 만성 신부전증으로 활동을 접고 투병중인 윤선중과 아버지가 가출한 후 장애인 어머니를 모시고 간호조무사로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엄여진의 사연도 기구했다. 가수 조성모의 조카인 오세준은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장애인 공연단인 꿍따리 유랑단에서 활동해왔다.

지난 넉 달 동안 이들은 서로 팀을 이루어 함께 노래하거나 솔로, 듀엣, 1:1 대결 등 주어진 미션들을 통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다. 사실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도 다르고 각자가 뚜렷한 개성과 음색을 갖고 있기에 처음에는 팀을 구성하고 호흡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곡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역할을 분담하고 연습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감이 이들을 뭉치게 만들었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이는 이들에게서 더 이상 실패자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사실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이들은 막상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한 가닥 남은 자존심, 또 다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가수들이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매주 탈락자가 발생하는 서바이벌 방식의 경연이라는 점도 부담스런 요인이다. 하지만 이들의 무대에 대한 남다른 갈망은 모든 것을 이겨냈다. 아쉬운 탈락의 순간에도 이들은 의연한 모습이었다. 괜히 미안해하는 승자를 다독일 줄 알았고, 다시 한 번 무대에 설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이들은 모두 승리자였다.

지난 주 렌미노팀이 최종 우승하면서 방송은 막을 내렸지만 이들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접었던 가수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다는 기대와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실제로 중도에 탈락한 여러 출연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고 새로운 기획사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덕분에 방송을 보면서 탈락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그들의 용기와 가능성에 기분 좋은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실패한 이들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는데 인색한 풍토가 만연해 있다. 지나친 경쟁사회가 빚어낸 폐단일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실패의 쓰라린 경험이 재기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사회라고 믿는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