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마침내 나로호가 하늘문을 열었다.

두 번을 실패하고 3수 끝에 나로호가 고흥군 외나로도 우주센터를 떠나 우주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과의 교신에도 성공했다하니 이제 맘졸일 일이 없어졌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우리 땅에서 처음으로 발사한 인공위성의 성공이 아닌가.

TV는 우주로 떠나는 나로호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같은 장면을 보고 또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은 성공을 한 기쁨을 좀더 오래 만끽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난다. 80년대 초반쯤이었을 게다. 컬럼비아인지 디스커버리호인지 정확히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유인우주선을 발사했고, 그 뉴스가 세계적으로 크게 보도됐다. 우리나라 TV도 뉴스시간마다 우주선의 모습을 반복해 보여줬다.

저녁 뉴스시간, TV는 또다시 우주선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장면을 보며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 “저거 아까 낮에도 가더니 아직까지도 가고 있네.” 그러자 곁에서 TV를 보던 영이가 할머니에게 핀잔을 주듯 말했다.

“할머닌, 달이 얼마나 먼데 벌써 가유. 아직도 한참이나 더 가야할 걸유.” 영이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우리 집에 도우미로 맡겨진 아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가 너무 진지해서 웃지도 못하고 뉴스를 보았었다.

이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지 수년이 되고 영이는 결혼해 아이를 둔 주부가 되었지만, 나는 TV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때의 대화가 생각나 혼자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틀린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우주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데 영이 말처럼 몇 시간에 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카메라가 잡지 못해서일 뿐이지 시야를 벗어난 로켓이 오랫동안 날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게 이제 그렇게 오래 날아간 나로호가 마침내 정상적으로 궤도에 들어서서 지구와 교신을 시작했으니 기쁜지 않을 수 없다. 일반 국민의 마음이 이럴진대 10년 세월을 고스란히 나로호에 바친 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진들은 어떨까. 갑자기 그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려진다.

2009년 8월 1차 나로호를 발사할 때, 역사적인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자 우주센터에 몰려들었던 관중은 2만 명이나 되었다. 그날 TV는 하루종일 특집방송을 내보내며 나로호에 대한 애정을 쏟았다. 그러나 페어링 한 쪽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실패를 하고 이어 2010년 6월 2차 발사에서도 폭발로 실패하자 국민들의 관심도는 급속히 떨어졌다.

이번 3차 발사를 앞두고도 지난해 두 번씩이나 발사를 연기하자 나로호는 관심밖으로 멀어졌다. 무관심은 형벌과도 같은 것이었다. 더욱이 이번마저 실패하면 다시는 발사기회가 없는 마지막 기회였다. 벼랑에 선 연구진들은 손톱·수염을 안 깎고 속옷도 안 갈아입으면서 매달렸다 한다. 이번 3차 발사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성공을 해서 그 기쁨이 배가된다.

3차 발사때 우주센터에 모인 사람들은 2000명. 2만명일 때와 비교해보면 관심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제 나로호 성공으로 우리는 스페이스 클럽에 들게 됐다. 스페이스 클럽이란 실체가 있는 기구는 아니지만 자국 발사장에서 자국 발사체로 자국 위성을 쏘아올린 우주기술 강국을 일컫는다. 일부에서는 이번 나로호가 순수 우리 기술이 아니라 러시아의 기술을 빌린 성공이라며 폄하하지만, 사실 성공 뒤엔 모방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우리가 IT강국이 되기까지에도 처음엔 외국의 기술을 받침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딛고 최고가 된 것이다.

우주기술도 마찬가지다. 질책도 필요하지만, 첫발을 떼는 시점, 격려가 필요할 때다.

현재 세계 우주개발 시장의 규모는 약 3000억 달러. 애플과 삼성이 주름잡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 규모가 2000억 달러인 것에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이제 우리는 나로호의 성공을 기반삼아 우주개발 사업에 도전해 본격적으로 하늘문 열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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