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 ‘시리우스’ ‘광해’ 등 1인 2역 열풍

페이스 오프 연기력, 보는 이에 재미 2배

캐릭터 묘사 노력과 높은 연기력은 필수

 

 

배우들이 잇달아 1인 2역에 도전하고 있다. 때로는 전혀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뿌리에서 나온 쌍둥이를 연기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외모가 닮은 두 인물을 번갈아가며 연기한다는 점에서 배우로서는 연기력의 시험대 위에 오르게 된다. 같은 얼굴을 한 채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것을 시청자 혹은 관객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은 하나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보다 배 이상의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같은 1인 2역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어 배우들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쌍둥이 그리고 페이스오프

SBS TV 월화극 ‘야왕’에서는 권상우가 몸을 파는 호스트 출신 밑바닥 인생과 변호사의 1인 2역을 연기 중이다.

두 사람은 어려서 고아원에서 헤어진 쌍둥이 형제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6회까지는 동생인 하류가 주인공이었다. 사랑하는 다해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바보 같은 순정남이다.

그런데 하류가 밑바닥 생활을 하는 와중에 간간이 멀끔한 양복차림의 권상우가 등장했다. 하류의 형 재웅이다.

권상우는 하류와 재웅을 오가며 두 인물을 연기 중이다. 감성적이고 순박한 하류와 단정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재웅. 하류와 재웅은 차림새와 캐릭터, 주변 인물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이룬다.

하지만 드라마는 7회부터 이 둘이 운명적으로 섞일 수밖에 없는 혼란 속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막을 내린 KBS 2TV 드라마스페셜 4부작 ‘시리우스’도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였다.

서준영이 살인전과자 형 은창과 사법고시를 패스한 형사과장 신우를 동시에 연기했다. 은창은 전과자이지만 따뜻하고 착한 캐릭터이고, 신우는 날카롭고 차가운 캐릭터였다.

따로 떨어져 있으면 상반된 이 두 캐릭터는 그러나 극중에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서준영은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고 연기하는 신이 잦았고 시청자는 헛갈리기 쉬운 상황이 이어졌다.

그만큼 미세한 연기력의 차이가 요구됐다.

서준영은 “아예 다른 드라마를 두 편 찍는다고 생각하고 촬영했다”며 “신우와 은창은 얼굴 생김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이라 쌍둥이라는 것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전혀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쌍둥이라는 설정은, 두 인물이 다르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같다는 점에서 다른 1인 2역과는 차이가 있다.

서준영은 “차라리 아예 다른 사람을 같은 척 연기하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며 “은창이와 신우처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인물을 연기하는 건 아무래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어 더 복잡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방송된 SBS ‘유령’에서는 소지섭이 페이스오프를 통해 얼굴이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두 인물을 연기했다. 경찰 김우현과 해커 박기영이 한날한시 화재사고를 당하면서 김우현이 죽자 전신화상을 입은 박기영이 김우현의 얼굴로 수술을 받은 것.

이를 통해 소지섭은 초반에는 김우현을 연기하다 김우현이 죽은 후에는 김우현인 척하는 박기영을 연기했다.

소지섭은 ‘유령’에 대해 “내가 이런 식의 연기나 캐릭터를 해냈다는 것이 뿌듯하다. 다음에 하게 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준 작품이다”고 말했다.

●왕자와 거지… 아버지와 아들

지난해 영화에서는 ‘왕자와 거지’ 개념의 1인 2역이 화제였다.

이병헌이 광해군과 광대 하선을 오간 ‘광해, 왕이 된 남자’와 주지훈이 세자 충녕과 노비 덕칠을 오간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그것.

어떤 인연도 없고 출신도 전혀 다른 두 인물이 단지 기막히게 비슷하게 생겼다는 인연으로 역할 바꾸기를 하게 된다.

이 경우는 두 인물이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태생적인 교감도 없다는 점에서 쌍둥이 연기에 비해서는 감정적인 부담이 좀 덜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역시 같은 얼굴로 전혀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데는 남다른 연기력이 요구된다.

이병헌이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역시 이병헌’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것은 그가 왕과 광대의 차이점을 기막히게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광해는 역사 속의 인물이어서 우리가 아는 것들을 기본적으로 가져가려 했고 하선의 성격은 어느 정도 대본에서 내가 만들어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1인2역의 어려움보다는 하선의 캐릭터를 잡아가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성인 연기자만 1인 2역을 하는 게 아니다.

‘이웃사람’에서는 열두 살의 김새론이 살인범에게 희생당한 뒤 새엄마의 환영으로 나타나는 중학생 소녀 ‘여선’과 같은 빌라에 사는 또래 소녀 ‘수연’을 연기했다. 음울한 여선과 발랄한 수연을 오간 것.

김새론은 당시 두 역할을 관객이 헛갈리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관건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차이점을 분명히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톤이나 걸음걸이도 다르게 했고 ‘여선’일 때는 몸에 힘이 빠진 듯이 움직였다”고 전했다.

KBS미디어의 정해룡 드라마본부장은 “한 연기자가 두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나 쌍둥이를 연기하는 것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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