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입 17만원…하루 꼬박 폐지 모아야 수중엔 1천원 남짓
600만원 전셋집 비워줄 처지…"컨테이너 박스라도 있었으면"

속보=폐지를 모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 양영복(77) 할머니가 전세 값을 구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7일자 14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1일 아침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의 한 골목길에서 양 할머니가 한파의 추위 속에서 폐지를 줍고 있었다. 꽁꽁 싸맨 머플러 사이로 드러난 꺼칠한 얼굴. 굽은 허리로 끌차에 몸을 의지한 힘겨운 발걸음은 그의 고단한 인생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 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고령의 양 할머니가 밖을 배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폐지를 주워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매달 나오는 노령연금 9만원과 장애수당 3만원 외에 폐지를 주워서 얻는 5만원 정도가 양 할머니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지난 45년간은 매달 노인 일자리사업으로 얻는 18만원의 고정 수입 덕분에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거푸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에 올해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결국 폐지를 모아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올겨울 계속된 한파에도 '생업'인 폐지 줍기를 계속했지만 하루꼬박 폐지를 모아도 수중에 쥐는 돈은 1000원 남짓. 때문에 돈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오는 4월께면 지금 사는 600만원짜리 전셋집도 비워줘야 한다.
양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듣고 주인집이 6년 동안 전셋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줬지만 부득이하게 집수리를 하게 돼 집을 비워줘한다.
일반 전셋집도 구하기 어려운데 폐지를 모을 수 있는 공간까지 있어야 하니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사글세는 형편에 꿈도 못 꾼다.
힘겨운 삶을 사는 양 할머니지만 최근 적십자사를 찾아 작은 감동으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폐지를 주워 판 돈 43400원을 본인보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에 기부한 것이다. 양 할머니로서는 한 달 이상 폐지를 팔아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4년 전부터 매달 먹을 것과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적십자 산하 청주부녀봉사회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전했다.
"하루 꼬박 모은 폐지를 판 돈 중 100원짜리, 500짜리 동전만 항아리에 모아왔거든. 남한테 도움만 받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나도 사람인데 너무 미안하잖아"
기부 얘기가 나오자 한사코 두 팔을 내젓던 양 할머니는 밥값이라도 줄여야 한다며 30분을 넘게 걸어야 도착하는 복지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태순 청주부녀봉사회장은 "수십년간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도움을 받는 노인에게서 성금을 받기는 양 할머니가 처음"이라면서 "이런 고마운 양 할머니가 집 밖에 나앉게 생겼는데도 큰 도움이 돼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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