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 한국교통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새해가 두 번 있어서 의례적으로 받는 신년 복도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로 받는 즐거움이 있지만 그에 따른 부담도 배가 되는 것 같다. 특히 올해처럼 연휴가 짧으면 귀성과 귀경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되고 이동에 따른 스트레스도 가중되곤 한다. 명절마다 벌어지는 고속도로 정체에 따른 사회적인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특정한 날을 정해 놓고 귀성해서 고향의 정을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비용대비 효과로만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고속도로 정체를 스마트 폰의 앱이나 라디오 방송을 활용하여 뚫고 왔노라고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들에게 무용담을 늘어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찌되었건 명절은 즐거운 시간임에는 틀림없지만, 명절이 지나간 자리에는 ‘명절 증후군’이 남아서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명절 증후군은 어떤 특정 구성원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주부들은 시댁에 내려가는 것조차 스트레스의 시작이고 고행 끝에 도착한 시집에서 기다리는 것은 그야말로 가사의 종합 선물세트이다. 한편 가장들은 장거리 운전은 물론 도착해서는 부모, 형제와 조카들을 챙겨야 하고 매년 똑같이 치러야 하는 일임에도 매번 많은 말들이 나오는 제사 문제, 산소 돌보는 문제 등을 정리해야 한다. 거기에 취업 준비생이나 시집, 장가를 제때 가지 못한 자손들은 일 년에 한 두 번 보는 친척들의 관심에 진저리 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집집마다 펼쳐지는 경기장(?)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말없이 그림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도 부엌에서 고생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마냥 좋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명절은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고 긴장을 끈을 늦출 수 없는 의무방어전이 되는 것이다.

명절 증후군으로 바쁜 곳이 병원과 법원이 되는 것은 위와 같은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명절 직후 여성의 경우 허리, 손목, 어께 등 관절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나며 남성의 경우에는 장거리 운전에 따른 허리, 무릎, 목 부위에 통증을 가진 환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또한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부부간 또는 집안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터져 나오게 되면서 ‘명절 증후군’이 ‘명절 이혼 증후군’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혼신청건수 중 약 20%가 명절 이후에 집중된다는 통계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닐 터이다.

이 같은 명절 증후군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주로 명절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춘 대책들로써 장보기, 음식 장만, 설거지, 청소와 같은 가사노동 분담, 명절 후 고생한 아내나 부모님께 선물을 한다거나 특히 아내에게 일정 기간 휴가를 주는 이벤트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이 명절 증후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명절 증후군에서 남성들도 예외가 아닐 뿐더러 명절 증후군이 단지 여성들의 극심한 가사노동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명절 증후군은 어찌 보면 시댁 중심의 유교적인 가부장적 문화에 따른 여성의 과도한 의무와 소외, 가장으로 대표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친척의 관심이라는 이름의 과도한 개입에 따른 서로간의 상처가 종합적으로 결부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 명절의 근본적인 의미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뿌리를 확인하고 그 가지들이 잘 자라는지를 확인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 나머지는 이를 위한 형식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명절의 본질을 잊은 채 형식에 치우칠 경우 갈등이 유발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가족에 대한 생물학적 정의를 넘어서 가족이란 가족 구성원에 대해 여러 가지 가치 있는 기능을 수행하여 구성원간의 교제와 사랑을 통해 정서적·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곳이란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명절을 맞이해서 단지 여성이라서, 아내라서, 남편이라서, 자식이라서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조금만 물러서서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명절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한다. 명절은 그야말로 현대 산업화 사회에서 휴식과 안식을 줄 수 있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중한 ‘힐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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