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신 준 청양군 목면 부면장

일본드라마 이야기다.

누군가 듣더니 제목한번 쿨 하다고 했다. 제목만 쿨한 게 아니라 스토리도 재미있다. 깔끔하고 꼼꼼한 남자 미츠오와 털털하고 대범한 여자 유카가 만나 결혼했다. 지진 때 함께 보낸 하룻밤이 인연이 되고 그게 엮이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결혼한’ 사람들이다. 방년 서른 살의 결혼 2년차. 콩깍지가 걷히고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둘은 대조적인 성격으로 사사건건 부딛힌다.

제가 레드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 그녀는 화이트 와인을 따요. 낮에 돈까스를 먹었으니까 저녁밥은 돈까스만 아니면 뭐든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녀는 틀림없이 돈까스를 먹고 싶다고 말하지요. 결혼하고 2년이 지났지만 맘이 맞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구요. 계절로 치면 장마예요. 관혼상제로 치자면 초상날이고… 결혼은 길고 긴 고문이예요.

자막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속사포처럼 터지는 남편 미츠오의 푸념이 화면에 가득하다. 찌질한 남편 미츠오의 불평을 재미있게 듣고 있노라면 그냥 생각없이 보기 적당한 드라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간간이 결혼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의 감칠맛이 물씬 느껴지는 좋은 드라마다. 결혼한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짠한 느낌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결혼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든다.

처음엔 착각 아닌가 싶었어. 그런데 자꾸 당신생각이 나는 거야. 맛있는 요리를 보면 혼자 먹는 건 아깝다 싶어지고 한밤중에 TV 보면서 웃을 때는 당신 얼굴이 생각나서 같이 있었으면 더 좋을 텐데 싶었고..

서로 그다지 성격이 맞지 않다는 거 알고 있었고 화나는 일도 많았어. ‘아냐, 이건 아냐’라고 생각했다가도 ‘어라? 이 사람 재밌네’ ‘그냥 성실한 거구나’ ‘거짓이 없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점점 뭐랄까, 언젠가는 서로 익숙해져서 남들처럼 부부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 애가 생기면 변할 거라고도 생각했어. 당신한테 말했더니 애같은건 필요없다 하고….

그러는 동안 깨달았지 아, 이 사람은 혼자가 좋은 거구나 자신의 자유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거구나 아, 그렇구나. 그럼 언제일까? 언제가 되어야 이 사람은 가족을 만들고 싶어지는 걸까? 언제쯤 이 사람은 가족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걸까. 결혼하고 2년 동안 나는 그 생각만 했어.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늘 다른 생각만 했지. 나는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거든. 당신은 나 같은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 당신이 좋아하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고! 웬만하면 인정 좀 하지 그래?

사사건건 부딪히다가 결국 성격차를 더 버티지 못한 두 사람은 홧김에 이혼신고서를 쓴다. 그걸 써놓고 남편 미츠오가 망설이는 사이 아내 유카가 구청에 가서 덜컥 해결해 버린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다. 동양권에서 결혼은 두 사람 만의 일이 아니다. 이제 양가에 이혼을 통지하고 승인받아야 하는 마무리 절차가 남았다. 둘은 ‘이혼이 원만하게 마무리 될 때까지’ 각방을 쓰기로 하고 룰을 정한 다음 기묘한 동거에 들어간다.

드라마를 보노라면 결혼생활에서 발생하는 상대방에 대한 불만은 세계 공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 하나하나를 쉽게 공감하게 만드는 것도 그래서다. 가까운 이웃나라의 삶이 묻어나는 친근한 정서가 기반이 되는 결혼 드라마니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거다. 이혼이 불행한 선택인 것만은 아니란다. 결혼 전과 1범이 전혀 스스럼없고 결혼도 이혼도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표현에서 그들의 현실적인 결혼관을 엿볼 수 있다. 드라마는 30대 초보 부부들의 결혼이야기를 통해 ‘부부란 무엇인가’‘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경쾌하게 그려 나간다.

인터넷 세상이 되고 나서 좋아진 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국경을 넘어 문화를 공유하는 일이 쉬워졌다는 거다. 최고의 이혼은 올 1월 10일부터 후지TV에서 방영중인 목요드라마다. 예전에는 일본드라마를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이 나라에도 좋은 드라마가 널렸으며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해 수입 방영해 줄 방송사도 없다. 무엇보다 그건 돈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법은 영상자료들을 개인적인 범위에서 이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영리목적이 아니라면 저작권법에서도 비교적 관대하다. 게다가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를 공유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빛의 속도로 문화가 공유되는 국경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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