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 리더십·신뢰 상실



내부 자료 유출 등으로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고 있는 청주상공회의소 사태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오흥배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청주상의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상의 내부 갈등 봉합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회장이 오히려 내부 갈등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대외적 위상을 실추시킨 책임이 크다는 게 책임론의 배경이다.

14일 열린 상임의원회에서도 이같은 책임론이 불거져 나왔다.

청주상의는 이날 전체 상임의원 18명 중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산안 심의 등을 위해 상임의원회를 열었으나, 부회장단이 전자상거래지원센터(ECRC) 수익금 특별회계 관리 등 전임 이태호 회장 시절 회계자료, 한명수 사무처장의 허위학력 논란 인사기록카드 등 내부 문건 유출에 대해 오 회장의 책임있는 해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안건 심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 회장은 개회에 앞서 “(청주상의 내부 갈등에 대해) 혼자 안고 덮고 가려고 했으나 내부적으로 개선 의지가 없다고 판단, 이를 공론화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 변호사의 자문을 받은 결과, 내부 문제를 회원들에게 알려줄 책임이 회장에게 있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밝혔다.

상의 내부 문건 유출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의도적으로 이뤄진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오 회장은 회의 시작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김인제 수석 부회장을 비롯해 이두영·노영수 부회장 등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내부 문건이 유출됐는지 회장의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 “그런 답변을 한 변호사는 누구인지 공개하라”고 오 회장을 압박했다.

이같은 부회장단의 해명 요구에 대해 오 회장은 “내가 자료를 유출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불과 몇 분 전에 자신이 한 말을 부정한 셈이다.

오 회장은 그러나 “상의는 공적기관이기 때문에 내부 문건도 얼마든지 외부인의 열람이 가능하다. 내부 문건이 유출돼서는 안된다고 하는 건 (이번 내분 사태의) 공모자나 같다”고 내부 문건 유출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 회장은 내부 문건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자 취재진의 퇴장을 요청한 뒤 비공개 회의 진행을 선언했으나, 취재진이 “상의는 공적기관이기 때문에 내부 문건도 얼마든지 외부인의 열람이 가능하다고 하면, 회의도 공개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회의 공개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문건 유출을 둘러싼 오 회장과 부회장단의 설전이 이어지면서 부회장단이 퇴장을 선언, 정족수 미달로 상임의원회 개회가 무산되는 사태를 빚었다.

회의가 무산되자 오 회장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꺼내 “정의는 외롭다. 그래도 가야 한다. ECRC회계 자료는 업무상 실수였다고 해도 관련 직원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사용처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한 사무처장의 학력위조 의혹은 사실로 드러난 만큼 징계위 회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회장단 등은 “내부 자료를 유출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대외적으로 공개됐느냐. 최근 부회장단과 만난 자리에서도 회장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무얼했느냐)”며 “이럴 바엔 부회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회장단은 또 “회장이 분명히 보고받은 내용에 대해서도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며 오 회장의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했으나, 설전만 이어지자 동시에 퇴장하면서 개최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상의 내분 사태를 바라보는 오 회장의 시각은 ‘정의 대 반(反)정의’로 해석된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은 정의이며,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은 모두 반정의로 규정, 사태 해결은커녕 오히려 내부 갈등 구조만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날도 오 회장은 “정의는 외롭다”는 말로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올바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으나, 상의 안팎에선 회장으로서 사태해결을 위한 책임있는 자세는 뒷전인 채 궤변만 내놓고 있다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내부적으로 치유하기 힘들 만큼의 상처를 받는가 하면, 대외적 위상도 추락할 만큼 추락했음에도 사태 해결을 위한 리더십이나 책임감은 보여주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주상의 노조마저 나서서 오 회장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지만, 오 회장은 “회원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회장에 대해 직원들이 사퇴를 요구할 권한이 없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도 적절치 않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말바꾸기도 비난을 사고 있다.

내부 문건 유출은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도 “그런 적이 없다. 언론이 오보를 한 것이다”는 등 말바꾸기를 거듭하고 있다.

이날 회의가 파행으로 끝난 뒤 기자회견을 요청한 취재진에게 “내가 열받아서 할 얘기가 없다. 점심때가 됐으니 짜장면이나 먹으러 가자”고 발언, 취재진 사이에서도 현재 상의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난 12일 오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한 청주상의 노조도 이날 성명을 통해 "최고책임자는 사태를 수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상처를 주고 있다"고 오 회장의 책임있는 자세를 거듭 촉구했다.

이처럼 상의 내분 사태는 봉합은커녕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수장인 오 회장은 현실을 외면한 주관적 판단에 함몰돼 내분 사태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상의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회원들의 집단 탈퇴 등 상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비관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 조직의 수장은 조직의 존립과 결속을 위해 헌신하는 책무가 요구되며, 이를 위한 자신의 희생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갈등과 반목은 조직을 해치는 가장 큰 위협요인이라는 점에서,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방관하고 조장한다면 수장으로서 이미 권위와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에 조직을 이끌어갈 자질이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따라 오 회장에 대한 책임론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청주상의가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고, 내부 결속 강화를 통해 거듭나기 위해선 오 회장의 희생적인 결단이 필요한 배경이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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