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을 원가 수준으로 현실화하겠다는 취지로 현행 6단계로 구분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35단계로 축소될 것으로 보여 서민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거나 아예 폐지해 단일요금을 적용하는 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현재 요금제 구간은 사용량 100h 이하인 1단계부터 501h 이상인 6단계까지 100h별로 단계가 나누어져 있다. 전기사용량에 따라 1단계와 6단계의 당 누진율이 11.7배에 이른다. 누진제를 완화하면 최고와 최저구간 요금 격차는 4~8배로 좁아지지만 전기를 많이 쓰는 가정의 요금부담은 지금보다 줄고 적게 사용하는 가정은 늘어나게 된다. 섣부른 누진제 완화 추진이 에너지빈곤층의 생활을 더 어렵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부는 전기요금이 잇단 인상에도 원가의 90%선에 머물고 있어 이를 현실화하고 가전기기 보급 확대에 따른 냉난방 전환수요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누진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거환경 변화로 저소득층이 아닌 1~2인 가구가 급증해 누진제로 인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약화됐다는 것도 지적한다. 지난 여름에는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면서 일부 가구의 전기요금이 평소보다 몇 배나 높게 부과된 것도 누진제를 손질하는 계기가 됐다. 외국의 경우 누진제가 없거나 있더라도 요율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감안됐다. 미국은 2단계에 1.1, 일본은 3단계에 1.4, 중국은 3단계에 1.5배가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전기요금 누진제의 도입 취지는 서민층을 보호하고 전기 절약을 유도하는 데 있다. 처음 시행된 1974년 당시에는 3단계에 요금격차가 1.6배였지만 석유파동을 겪으며 1979년에는 12단계에 19.7배까지 세분화되는 등 줄곧 다단계와 현격한 요금차이를 유지해 왔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이 가파르게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안대로 누진제가 개편되면 전기사용량이 적은 서민과 저소득층의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가중된다. 구간을 200h3단계로 하고 요금격차를 3배로 설정하면 50h 사용 가정은 3121원을 더 내야하지만 601h 사용 가정은 54928원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서민보호 제도를 없애서 부유층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비판을 비켜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철만 되면 전기사용량이 사상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해 블랙아웃 위기가 반복되는 현실에서 전력당국이 적극적인 수요관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한달 전에 전기료를 4% 인상하는 등 불과 1년 반 사이에 4차례나 요금을 올리고도 또 다시 누진제 개편 카드를 꺼내든 것은 명분이 약하다.

특히 누진제 개편이 요금부담 때문에 전기사용을 극도로 자제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빈곤층을 무더위와 강추위로 내모는 것이라면 재고해 봐야 한다.

지난해 말 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기자 촛불을 켜고 생활하던 할머니와 손자가 화재로 숨진 사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20만으로 추정되는 에너지 취약가구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누진제 개편을 추진하더라도 기본적인 소비구간을 넓혀 에너지빈곤층이 낮은 요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심한 보완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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