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맛의 영화 일단 한번 느껴보세요”

 한 여자 피살 뒤 관련된 네 남자가 벌이는 기묘한 이야기

남자들의 비굴하고 야비한 ‘토강여유’ 속내 들춰내

“이상형의 여자 만난 것처럼 가슴뛰는 작품 해보고파”

 

 

배우 조진웅은 영화를 식당 메뉴에 비유했다.

“요즘 극장에 가면 고급 재료의 값비싸 보이는 음식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이 이 음식점의 대표 메뉴죠. 그런데, 대표 메뉴만 드시면 편식이에요. 새로운 메뉴도 맛보셨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마따나 영화 ‘분노의 윤리학’은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맛이다. 한 여자가 살해된 뒤 그녀와 관련 있던 네 남자가 벌이는 기묘한 이야기다. 남자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분노하고 다른 목적으로 서로 괴롭힌다. 이런 네 남자가 한꺼번에 부딪히는 상황은 한 편의 부조리극과 비슷하다.

네 남자 중 돈을 뜯어내는 데 혈안인 사채업자 ‘명록’으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조진웅을 만났다.

“관객들이 한 번 이런 맛도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설사 관객들이 많이 안 드신다고 해도 이런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시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국내 상업영화가 점점 공식에 맞춰 비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도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영화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독특하다 보니 그 역시 처음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고서 박명랑 감독에게 물었다.

“‘남자들을 다 왜 이렇게 만들어요? 찌질하고 비열하고. 굳이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다들 이렇게 살지 않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자기가 불리해질 때 비굴해지고 약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더 가혹하게 대하고 나약하고 비겁하기도 하고요. 여기 나온 인물들의 그런 속성들이 한 사람 안에 있을 수도 있다고 봐요. 내 속에도 그런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는 사채업자 연기를 하면서 일반적인 사채업자 이미지의 전형성을 극대화했다고 했다.

“분명히 현실에도 존재하는 캐릭터예요. 그래서 이 캐릭터를 앞으로 더 쭉 밀어버린 것 같아요. 다른 영화에선 캐릭터를 그리면서 내 안에 있는 것을 더 끌어내서 내 것으로 만들었는데, 이건 오히려 캐릭터를 앞에 놓고 저는 뒤로 숨었어요. 새로운 시도였죠.”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사진 스튜디오 장면은 그의 연기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그만큼 찍을 때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스튜디오 장면에서 연극처럼 전체 조명을 켜고 3일 정도 촬영했는데, 찍어놓고 보니 많이 비어 있는 느낌이고 재미가 없다는 의견들이 있어서 다음날 전면 수정에 들어갔어요. 대사부터 시작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조정했죠. 배우들이 처음엔 잠깐 당혹스러워했지만 흐름을 익숙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그렇게 5~ 6일 동안 똑같은 장면과 대사를 반복했는데, 워낙 진을 빼는 연기이다 보니 끝나면 혈압이 이렇게 올라오더라고요.”

극 중에서 그는 인간의 보편 감정인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중 분노가 가장 강한 감정이라고 설파한다. 실제로 인간 조진웅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반응할까.

“분노할 때는 무언가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때잖아요. 저는 일단 이성적으로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데, 다음 단계는 슬퍼지더라고요. 화를 참았던 제 자신이 슬퍼져요. 간단한 언쟁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데, 거기서 화를 못 내는 상황이라면 집에 와서 베개를 뒤집어쓰고 울기도 하고 그래요. 많이 울었죠(웃음). 이젠 ‘영리하게 살아야지’ 생각합니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무시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거죠.”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나와 숨은 예능감을 뽐내 화제가 됐지만, 그는 스스로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저라는 인간 자체는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영화) 작업을 하면서 재미있어지죠. 일상생활을 할 때는 말도 별로 없고 평범해요. 제가 연기한 인물들 중에는 닮고 싶은 캐릭터가 많아서 좋아요. ‘뿌리깊은 나무’에서 믿음직한 ‘무휼’이라든지, ‘사랑을 믿어요’에서 국밥집 사장님 같은 섬세한 캐릭터요.”

영화계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는 올해에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김윤석·여진구 등과 호흡을 맞추는 누아르 ‘화이’, 최민식·류승룡 등과 함께하는 사극 ‘명량-회오리바다’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명량…’에서는 일본 사무라이 장군 역할을 맡아 처음으로 외국어 연기에 도전한다.

“제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를 할 순 없겠죠. 그런 것만 아니면 굉장히 많이 (캐릭터에) 부딪히려고 해요. 어떤 시나리오를 읽으면 이상형의 여자를 만난 것처럼 밤에 잠도 안 오고 가슴이 쿵쾅쿵쾅 뛸 때가 있는데, 그렇게 끌리는 작품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