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자 수필가

‘이웃사촌’ 이란 말에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배어있다. 비록 남남끼리라도 서로 이웃하여 다정하게 지내면 사촌과 같이 가깝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길래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 멀리 있는 친척도 사촌만은 못해요
그 누구가 뭐래도 이 마음은 언제나 / 내 이웃의 슬픔을 내가 대신하지요

이런 유행가를 부르며 살던 우리다.

명심보감에는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이라는 말이 있다

“멀리 있는 물로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고, 멀리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도 못하다”는 말인데 아무리 가까운 형제지간이라도 멀리 떨어져 살다보면 위급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실제로 도움을 주고 부담 없이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형제가 아니라 이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담장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옆집이라도, 현관문을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앞집이라도 평소에 왕래가 없었거나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면 이런 말도 성립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지 10년째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왕래를 하고 사는 집은 한 통로 50 세대 중에서 다섯 손가락을 꼽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처음에 이사 와서 한 5년은 반상회도 열고 서로 얼굴을 익히며 살았다. 새로 입주해서는 아파트 분양 후의 하자보수나 관리 상태 등 공통 관심사를 토론하기도하고 반상회 날이면 이웃들과 나눌 음식을 장만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5년쯤 지나니 이사 가는 사람이 많아졌고 새로 이사 온 사람들과 서먹서먹 해지다보니 반상회도 슬그머니 없어져 버리고 지금은 처음부터 입주해서 살던 사람이 3분의 1도 안 된다.

‘급한 일이 나면 누굴 부를 수 있을까?’ 한 번쯤 짚어 보게 된다. 한 통로에 살면서도 고작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짧은 시간에 안부 한마디 묻기가 바쁘다. 새로 이사 와서 얼굴이 익지 않은 사람에게는 목례만 하고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마는 것이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아파트 생활이다.

어린 시절 대문이 활짝 열려있던 친구네 집, 이웃집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고 저녁이면 마을로 놀러가고 밤이 이슥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때도 있던 그 시절의 사람냄새와 그 정이 그립고 아쉬울 때가 많다. 이웃집의 대소사를 내 일처럼 함께 해결하다보니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알고 지내던 그 인정이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워야 할 민족 최대 명절 설날을 하루 앞두고 이웃 간의 층간 소음으로 인해 30대 젊은 형제 2명이 이웃에 의해 흉기에 찔려 숨지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또 설날에는 다세대주택에서 이웃끼리 층간 소음으로 인해 집에 불을 지르는 범죄도 발생했다. 이런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 놀랍지만 그동안 층간 소음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가를 말해준다.

층간 소음은 아파트나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며 고민하고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아래층 사람은 위층에서 내는 소음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노이로제가 되고 위층 사람은 늘 소음을 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고 있으니 그것이 쌓이다 보면 이웃 간의 시비로 번지게 된다. 조용한 때는 위층 사람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까지 다 읽을 수 있고 바로 위층이 아닌 다른 층에서 나는 소리도 바로 위층에서 나는 소리로 오해 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보니 아파트 구조와 건축공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 국민 65%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니 층간 소음은 이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살인사건 방화 같은 문제가 불거지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서둘러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한다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듯하니 더 답답하다.

공동주택의 생활 소음은 아이들 뛰는 소리, 문 닫는 소리, 애완동물이 짖는 소리, 세탁기, 청소기 돌리는 소리, 운동기구 사용하는 소리 등 누구나 낼 수 있는 소리이니 내가 본의 아니게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웃 간의 이해와 양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뛰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자녀들을 단속하고 집안 행사로 사람이 많이 모일 때에는 양해를 구하는 등 예방 교육과 이웃 간의 소통이 절실하게 필요한 문제지 법으로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이웃사촌’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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