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일 극동대 교수

 

이태백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을 줄인 표현이다. IMF 이후 만연한 청년실업을 풍자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이 최근 시작한 드라마 주인공 이름으로 등장했다. SBS 월화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이다. 이름 그대로 주인공의 앞길은 깜깜하다. 풍족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스펙도 보잘 것 없다. 지방대학 시각디자인학과를 중퇴했고 토익 점수도 신통치 않다. 멋진 광고인이 되겠다는 꿈 하나로 유명 광고대행사의 문을 두드리지만 서류 전형이라는 1차 관문도 통과하지 못한 채 낙방하기 일쑤다.

어렵사리 조그만 광고회사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주인공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오너는 한때 광고계에서 승승장구한 인물이지만 지금은 퇴출당한 신세이다. 그는 과거 분유광고 제작을 진행하던 중에 제품에서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유해성분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로 인해 광고주와 마찰이 일었고 양심을 속일 수 없었던 그는 이 사실을 언론에 고발했다. 주인공이 광고수주를 위해 그렇게 동분서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거절당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다. 대기업 광고를 대행하는 거대 광고회사의 부당한 로비와 자금력 동원을 감당하지 못해 이미 수주한 광고까지 뺏길 뻔했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인 광고대행사는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 가운데 하나이다. 드라마는 이곳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리얼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수많은 광고가 기획되고 제작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PD가 광고기획자 출신이라 그런지 상황묘사가 상당히 현실감 있고 디테일하다.

그러나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이 처한 현실은 주인공만큼이나 갑갑하다. 일단 대진운이 좋지 않다. 같은 시간대 방송하는 MBC ‘마의SBS ‘야왕이 서로 앞서거니 하며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출연진의 급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마의의 주인공 조승우는 영화와 뮤지컬을 섭렵한 거물급 스타이고 상대역인 이요원 또한 인기 사극 선덕여왕의 히로인이었다. ‘야왕의 권상우와 수애 역시 막강한 스타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정통 사극에서 볼 수 있는 방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소소한 갈등이나 상황만으로는 이미 서로 물고 물리는 치열한 복수극이나 거대한 음모에 길들여진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더구나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결말도 이미 예측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주인공은 마침내 꿈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뻔한 스토리가 관심을 끌려면 그만큼 그럴 듯하게 과정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시청률이 4%를 밑돌 정도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관심이 가는 것은 주인공의 처지가 남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대학생의 62.6%가 넘는 131만 명이 지방대를 다니고 있다(2012 교육기본통계). 이 가운데 많은 이들이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에게 광고천재 이태백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현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와 다르다.

하지만 이태백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광고천재 이태백은 실제 인물인 광고인 이제석 씨를 모델로 하고 있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이제석 씨는 지방대 출신으로 졸업 후 취업은커녕 면접 보러 오라는 곳도 없어 동네 간판가게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세계 유명광고제에서 연달아 수상하면서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광고천재가 되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현실에서도 드라마와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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