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한솔댁의 외손녀 윤지가 또 운다. 5살짜리다. 울 때는 아주 진피다 진피. 그러니까 한번 울었다 하면 끈질겨서 끝이 없다. 때는 여름이다. 기선씨가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고추를 따러 밭으로 나가는데 한솔댁 고추밭머리 둑 위에 있는 늙은 뽕나무 아래서 윤지가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운다. 아까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이랬었다. “윤지, 왜 울어?” “싫어, 싫어, 엄마 싫어, 아빠 싫어 엉엉!” “왜?” “엄마, 아빠가 나 여기다 놓구 갔어. 빨리 집에 갈 꺼야. 엉엉!” “왜, 할머니가 때렸어?” “아냐, 아냐 할머니 미워. 하드두 안 사줘. 청주집에선 많이 먹었어. 집에 빨리 가구 싶어. 엉엉!” “아유, 울면서 할 말은 다 하네.” “싫어, 싫어 아저씨두 싫어. 저리 가 빨리 가. 엉엉!” “그래, 갈게. 할머니 저렇게 꼬추 따구 계시잖어 바뻐서 그러셔 금방 오실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어 응?” 그리고 돌아서는데 금방 울음을 딱 그치더니, “하하, 아저씨 똥꼬 바라, 쌌나 바 쌌나 바, 얼라리꼴라리!” 하며 까르르까르르 대는 거였다. 돌아보니 궁둥이에 흙이 묻어 젖이 있었다. 기선씨가 피식 웃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또 다시 엉엉 울기 시작이다. 이랬는데 지금 또 울고 있는 것이다. “윤지 점심 먹구 왔어?” “응, 엉엉!” “근데 왜 또 울어?” “할머니가 나하구 안 놀아 꼬추만 따. 엉엉!” “엄마가 인제 데릴러 온대잖어 그때까지 울지 말구 잘 놀아. 할머니 말씀 잘 듣구 알었지?” “아저씨 싫어 내 편두 아니구. 엉엉!” 그러더니 또 느닷없이, “아저씨, 아저씨 똥꼬는 똥쌌대요. 그래서 젖었대요. 호호호 헤헤헤 깔깔깔!” 하여튼 울면서도 제 억울한 말은 다하고 웃기까지 한다. 여수다 여수. 하긴 기선씨도 어렸을 적엔 그랬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우지였다. 걸핏하면 울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그치질 않았다. 그래서 식구들이 내버려 뒀다. 딴에는 무엇이 억울해서 슬퍼서 아파서 우는 것인데 그건 들어주지 않고 실컷 울게 내버려 두란다. 그러면 대거리를 하며 운다. “왜 나만 때려, 왜 사달라는 거 안 사줘. 키만 크면 젤야 나두 낭중에 클 거야 그때 봐….” 갖은 푸념을 늘어놓다 급기야는 제풀에 지쳐 달래주기를 청한다. “나좀 달개줘, 나 좀 달개줘!” 이때 누가 한 사람이라도 손을 내밀면 벌떡 일어나 언제 울었느냔 듯이 금세 상냥한 얼굴이 되어 헤헤 웃는다. 이, 울면서 사설 놓는 푸념이라는 것이 원통한 일이나 억울한 일 또는 불만을 두덜거리며 늘어놓는 넋두리여서 한참을 주워생기다 보면 그간의 모든 마음속 앙금이 풀어져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뒤엔 웃음이 따른다는 걸 기선씨는 어른이 돼서야 깨달았다.

울음 중 사람의 주검 앞에서의 울음이 젤로 클 것이다. 그래서 통곡을 하는데. 꼭 망인과의 얽힌 한과 서러움을 넋두리로 엮는다. 길게, 길게 한참을 이러다 보면 그 망인과의 얽히고 설켰던 그 한과 서러움의 앙금이 저절로 녹아들어 마음이 비워진다. 그러면 새로운 마음이 들어설 수 있다. 그래서 흡족해져 웃음을 맞는다.

울음의 역할은 이렇듯 중하고 커서 지난날엔 곡비(哭婢)라는 직업인이 있었다. 상가(喪家)를 돌아다니며 울음을 파는 여인인데, 원래는 장례 때 행렬 앞에서 곡을 하며가던 여자 종을 일컬었던 것으로, 몇 날 며칠을 줄곧 곡을 해야 하는 상제를 대신해서 구성지고 능청스럽게 넋두리를 엮음으로써 망인의 혼백을 달래고 상가식구들의 무거운 설움을 덜어주고 누그려주었던 것이다. 기선씨는 지난 가을에 ‘충북민속예술축제’에서 현대판 곡비를 보았다. ‘방골큰애기소리’라는 작품인데, 초례청에서 초혼의 신부가 신랑의 하나만 꼽혀 있는 사모뿔 모습에서 재혼으로 오인해 그 자리에서 혼절하는 바람에 한스럽게 죽어 장사를 지내는 상여행렬대목에서다. 망인의 어머니역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상 옷을 입고 상여 앞에서 그 신부의 한스러운 사연을 사설로 뇌면서 땅을 치며 울부짖고 가는데 그 곡소리며 넋두리가 얼마나 실제답게 애달프던지 절로 눈물이 쏟아지던 거였다. 그때 마음속에 억압되었던 감정의 응어리가 정화되는 걸 느꼈다. 그 여인은 곡비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또 국상(國喪) 때는 곡반(哭班)이라는 벼슬아치가 있어 곡을 대신 맡아하기도 했었다.

사람이 세상에 처음 나오면 제일 먼저 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웃기도 한다. 그러니 웃음은 울음 뒤에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그래서 가만히 따져보면 인생이란 울음 반, 웃음 반이다. 하여 이럴진대 울 때는 실컷 울고, 웃을 때도 실컷 웃어야 가슴속이 후련해진다는 게 기선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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