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신 준 청양군 목면 부면장

시범케이스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이지만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는 단어다. 시범이란 모범을 보인다는 말이고 케이스는 사례를 뜻하니 풀어 놓으면 모범사례 쯤 되겠다. 그런데 이 단어가 실제로는 원뜻을 비켜 다른 방향으로 쓰인다. 과오에 대한 일벌백계로 징벌의 본보기를 보인다는 의미다. 주로 한 놈만 조지면나머지는 알아서 긴다는 험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신병교육대에서였다. 첫날 낮 훈련이 끝나고 내무반 침상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키가 작달막한 상병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모두에게 불문곡직 기합을 주기 시작했다. 열중쉬엇 자세로 내무반 바닥에 머리를 박는 원산폭격이었다. 어리둥절해진 훈련병들은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그는 급기야 혁대를 풀더니 허공에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 입에서 튀어 나온 단어가 바로 문제의 시범케이스였다. 불만있는 새끼 나와 봐. 시범케이스로 조져 줄 테니까. 내무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 붙어 버렸다.

30년도 더 넘었으니 무척 오래 된 일이다. 요즘처럼 신세대 장병들의 민주군대에서야 언감생심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겠지만 당시만 해도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신병 군기잡기 행사였다. 폐쇄된 군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시범케이스 협박은 보는 사람들을 금새 공포에 빠트리기에 충분하다. 그 집단공포가 시범케이스의 주 작동원리다. 시범케이스는 동작이 굼뜨거나 반항적인 장정들이 주로 대상이다. 내무반장이 한사람을 지목한다. 지목된 사람은 그 앞으로 불려 나오게 된다. 그리고는 대개 군화발로 배를 걷어차인다. 그러면 대부분 뒤로 넘어지게 돼 있다. 사실 군화발로 걷어차이는 것은 본인에게 그리 큰 타격이 아닐지라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겁을 집어 먹게 만드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이후부터 사람들의 동작이 갑자기 신속해진다. 누구도 감히 내무반장의 명령에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시범케이스의 대표적인 프로세스다. 대상이 신병일수록 효과가 높아지는 건 물론이다.

시범케이스에 대한 공포가 남자들의 군대 트라우마를 낳았을 것이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 술자리에서 흔히 화제에 오르는 대상이 군대에 다시 가는 고약한 꿈 이야기다. 꿈의 형태는 다양하다. 서류가 잘못됐다고 다시 가는 경우도 있고 형 대신 가는 경우까지 있다. 심지어는 제대를 며칠 앞두고 전역이 취소됐다는 통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스라쳐 잠을 깨보면 다행히 꿈이다. 이나라 군대의 씁쓸한 추억이다.

그래서일까. 시범케이스에 대한 공포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무의식중에 계속된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기를 꺼리는 토론기피현상은 집단공포 학습효과가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문제는 여기 있다. 시범케이스가 효과적으로 다른 의견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전체적인 조직효율을 떨어뜨리는 악습이다. 시끄럽다고 말을 막아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말을 막으면 그 해악은 결국 조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사회전체의 퇴행을 가져오게 된다. 일방적으로 억눌린 다른 의견들은 결국은 사회의 그늘이 되고 그걸 풀기 위해서는 수많은 악순환의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있다.

시범케이스는 본래 어설픈 집단주의의 부산물이었다. 우리에게 어설픈 집단주의가 이렇게 횡행하는 건 우리 역사에 제대로 된 근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는 개인의 자각이 핵심이다. 자유라든가 민주라는 개념은 개인의 자각을 기반으로 이뤄진 것들이었다. OECD에 가입한다고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가. 물질이 발전한다고 의식의 성장까지 한꺼번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스스로 껍질을 깨는 통과의례가 필요한 거다.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를 쫏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시대를 발전시켰던 동력은 대부분 새로운 다음 세대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과거의 성장 동력이 새로운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영원한 진리는 없다.

이제는 상호공유를 통한 수평적 리더쉽의 시대다. 다른 의견들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보다 활발한 논의를 통해서 방향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논의는 많을수록 좋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을 거친다. 그래서 다수 의견이 도출되면 전체의 의견으로 합의해 가는 과정이 바로 자유 민주주의가 자랑하는 의사결정 시스템 아니던가.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식량결핍이 아니라 내부 비판의 결핍이라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말을 가슴깊이 되새겨 봐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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