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내정자, 일방적 자금공급 한계 지적 - 전문가 "이 기회에 중구난방식 지원 손보고 컨트롤타워 세워야"

박근혜 정부가 서민금융 전반을 손보겠다고 나섬에 따라 정책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 '군사작전 같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차별화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서민금융과 관련해 4일 "지금까지는 자금 공급을 통한 '자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나는 신용회복을 병행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5년간 저신용자 저리융자 상품인 햇살론, 미소금융, 새희망홀씨 등 '서민금융 3종세트'와 자산관리공사의 바꿔드림론, 신용회복위원회의 긴급생활자금 등으로 4조원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이 같은 자금 공급 방식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통받는 서민층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물량공세'에 치중한 나머지 각종 부작용도 생겼다.

중앙대학교 박창균 경영학부 교수는 "'정치권의 의중'이 실리다 보니 전시행정을 펴게 됐다"며 "매월 실적을 집계·발표하고, 연말까지 전담 점포를 몇 개 만들고, 대출을 얼마 하라는 식으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해 무리가 갔다"고 비판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도 "금융으로 해결할 부분과 복지로 해결할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며 "복지로 접근할 대상자인데도 막무가내로 실적을 압박하다 보니 금융권이 퍼주기를 했고 연체율 상승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햇살론은 출범 초기 1% 안팎에 불과하던 연체율이 지난해 말 9.9%까지 올랐다. 미소금융과 바꿔드림론의 연체율도 5.7%와 9.1%로 처음 도입됐을 때와 견줘 배 가까이 높아졌다.

기부금이나 휴면예금 같은 자투리 돈을 활용하다 보니 도덕적 해이에도 직면했다. 자금을 관리·집행하는 기구의 부패나 이를 악용한 사기가 발생했다. 부실을 걱정한 나머지 필요한 곳에 돈을 빌려주지 않는 현상마저 벌어졌다.

현대경제연구원 백흥기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세금을 쓰지 않고 실적을 내도록 은행을 압박하니 연체율은 연체율대로 오르고 정작 자금 지원에 목마른 사람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생겼다"고 진단했다.

신 내정자도 단순히 서민에 돈을 쥐여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데 공감한다. 기존의 서민금융 체계로는 낮은 금리에 돈을 빌려 연명하는 '부채의 연장'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서민금융의 자금공급과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어느 정도 진전이 됐다"는 언급으로 미뤄 신 내정자가 공식 임명되면 새 정부 서민금융의 한층 구체화한 대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계속 신용불량 상태에 머무르면서 자금만 지원받는 게 아니라 신용을 회복하고 자활 노력을 기울여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햇살론, 미소금융, 새희망홀씨는 이명박 정부의 색채가 짙더라도 당분간 유지할 방침이다. 부작용은 제쳐놓더라도 긍정적인 도입 취지는 살릴 필요가 있는 데다 현재 모아둔 재원과 수혜자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새 정부의 서민금융 체계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최근 시작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일단 감사원은 '서민금융 3종 세트' 같은 서민정책금융보다 상호금융조합이나 새마을금고 같은 서민금융기관에 감사의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칫 '4대강 감사'처럼 지난 정부와 선 긋기에 나서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서민금융의 컨트롤타워가 무엇보다 절실하며, 어디까지나 금융의 '기본'을 훼손하지 않아야 도덕적 해이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금융연구원 구정한 연구위원은 "서민금융 상품이 워낙 종류가 많은데다 재원과 운영 주체가 다르고 중복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기능을 재편하고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시중은행의 서민금융 담당 실무자는 "원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도덕적 해이를 걷잡을 수 없게 돼 금융의 기본 질서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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