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 문학평론가

 
세 달 전 큰 아들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가며 생후 두 달 된 작은 강아지를 사주고 갔다. 처음엔 강아지 키우는 게 익숙치 않아 공연히 키우기 시작했나 후회를 하기도 했으나 어느새 우리 식구처럼 익숙해져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흰색 털에 까만 눈을 가진 말티즈인 천사는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라 우리 집에 올 때 오백 그램이던 것이 세 달이 지나자 이 킬로가 넘는 준 성견이 되었다. 모습이 의젓하고 대소변도 패드에 잘 가리고 예방접종이 모두 끝나 손 갈일 크게 없는 사랑스런 가족 구성원 되었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는 아이가 외로움을 많이 타듯 천사 또한 친구 없이 자라 그런지 나만 졸졸 따라 다니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 시간 날 때 마다 놀아준다고 해도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내가 놀아주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 다른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천사는 성격이 밝고 구김이 없어 어쩌다 손님이 오면 어찌나 사람을 좋아하고 졸졸 따라 다니는지 보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는 처음이라는 말을 할 정도다. 특히 개를 좋아하는 여동생이 오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저러다 혼절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제력을 잃는다. 똑같은 말티즈를 키우는 이웃 사람들이 자기네 개는 낯선 사람이 오면 하도 짖어서 민망하고 시끄러워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모든 개가 다 사람을 그렇게 따르는 건 아닌가 싶다.
강아지 또 한 마리를 키울까 어쩔까 생각하던 중 서울에 있는 작은 아들이 마침 내려왔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작은 애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애견 센터로 강아지 구경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냥 구경만 하자고 나간 우리 세 식구는 지난 번 천사를 데리고 온 애견 센터에서 또 다른 예쁜 말티즈를 만나게 되었다. 외모가 천사만은 못하지만 나름대로 사랑스럽고 활달한 생후 두 달 된 강아지였다. 망설이는 우리 내외에게 작은 아들이 이번에는 자기가 강아지를 사주겠다며 얼른 집으로 데리고 가자고 했다. 엉겹결에 또 다른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온 우리는 이번에는 이름을 사랑이라고 붙였다.
집으로 온 사랑이는 저녁을 먹자 우리안에서 곧 잠이 들었고 그날부터 우리 가족으로 편입되었다. 사랑이에 비해 훨씬 덩치가 큰 천사는 사랑이의 존재가 신기하고 낯선지 우리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나에 비해 훨씬 꼼꼼하고 자상한 남편은 그동안 천사에게도 각별한 정을 주었는데 사랑이가 오자 전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썼다.
애들을 키우다 보면 첫애를 키울 때와 둘째 애 키울 때가 다르다. 연년생 형제를 키운 나도 큰애를 키울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고 경황이 없었는데 둘째 애를 키울 때는 훨씬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애가 둘이다 보니 서로 시기를 하기도 하고 편애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신경을 쓰기도 했다. 몇 달 차이 나지 않는 강아지 둘을 키우다 보니 그때의 상황과 똑 같았다. 언니인 천사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둘째인 사랑이는 언니로부터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 했다.
천사와 사랑이는 성격이 참 많이 달랐다. 천사는 겁이 많고 사람을 많이 따르는데 천사와 달리 사랑이는 대범하고 아주 독립적이었다. 한주 정도 우리에 있던 천사와 달리 사랑이는 이틀만에 바로 밖으로 내놓았다. 어찌나 갇혀 있는 걸 싫어하는지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 심야에 우리 부부가 마루로 뛰어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천사는 우리에서 나온 뒤 집안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무서워 돌아다니지 못했는데 사랑이는 우리에서 나오자마자 어두운 목욕탕이며 집안 구석구석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덩치 큰 천사에게 덤비는 건 보통이고 방석위에서 천사가 자고 있으면 엉덩이를 들이밀며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소변은 영락없이 패드에 보고 대변이 마려우면 거실문을 두드리며 낑낑거려 문을 열어주면 앞베란다로 뛰어나가 구석진 곳에다 볼일을 보고 왔다. 아롱이 다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며칠 되지 않아 어느새 두 마리 강아지가 친해져 서로 뒹굴며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할 수가 없다. 요즘 우리 부부는 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삶은 참 아름다운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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