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 청양군 목면 부면장

 
달나라에 다녀 온 우주인에게 기자가 물었다. 달에 가서 뭘 보고 왔나? 우주인이 대답했다. 지구가 아름답더라. 우리가 매일 살고 있는 지구는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다.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는 걸 알기 위해서는 지구를 떠나야 한다.
지난 목요일 일드 최고의 이혼은 9회째였다. 11회로 종영될 드라마는 점점 대단원을 향하고 있다. 아내 유카와 이혼한 미츠오는 전에 연인사이였던 아카리라는 여자를 만난다. 조신한 성격의 아카리는 미츠오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통하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아내 유카는 소탈했다. 격의없이 소탈한 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장점이겠지만 견딜 수 없는 단점이 되는 사람도 있다. 미츠오가 그랬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거고 그래서 둘은 결국 헤어졌다. 결혼까지 파토 낼 치명적인 단점을 연애시절에는 왜 보지 못했을까. 그때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게 장점으로 돋보이는 마법에 걸렸었거나.
9회 드라마의 정점은 네 사람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이혼 직후 감정정리가 제대로 안된 전처 유카와 이제 막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한 사람 아카리, 그리고 그 남편 료가 함께 한 살얼음 밟는 자리다. 게다가 그 남편 료와 전처 유카는 그동안 제법 가까워진 사이다. 왠 막장인가 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드라마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된 설정이다. 아무튼 사건당사자 넷이 모였다. 방안에는 미묘한 공기가 흐른다.
무슨 일이 벌어질 건가. 성급한 유카가 전 남편 미츠오와 아카리 두 사람의 죽이 척척맞는 관계를 비꼬기 시작한다. 때늦은 질투다. 급기야 제풀에 울음을 터트린다. (아카리라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울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는 울면서 말한다. 당신네 둘이 잘 맞는다고. 애초에 결혼이란건 잘 맞는 사람들끼리 해야 하는 거였다고. 울다가 웃다가 감정정리가 엉망이다. 상황을 수습하려고 ‘전 남편’ 미츠오가 유카를 달래며 데리고 나가려 한다.
거기에 아카리가 끼어든다. 지금 그럴거면 왜 헤어졌느냐고 묻는다. 유카 당신이 이혼신고서를 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 와서 무슨 하소연이냐고. 집에서 아내에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남편은 세상에 널렸다. 남편이 일에 지쳐서 집에 돌아왔을 때 고생했다고 말한 번 한 적이 있었느냐. 그래도 표현도 잘 못하고 사람들과 잘 사귀지도 못하는 그 남자는 밖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살고 있지 않느냐. 술도 마시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 청소하고 세탁하고 심지어 자기 도시락까지 싸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그동안 왜 불평만 했느냐고.
듣고 있던 전 남편 미츠오가 고백한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실은 아카리네 가족하고 넷이서 캠핑을 가고 싶었다. 내가 캠핑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더구나 애들까지 있었다면 시끄러웠겠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지 않았겠냐. 아카리가 행복하다면 조금 섭섭했을지 모르겠지만 (전여친이니까) 그래도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내가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평생 이혼같은 거 모르고 살았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이혼을 한 뒤 비로소 이혼버튼은 부부가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누구든 그걸 누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눈치없는 료가 넷이서 밥이나 먹자며 아카리가 미츠오와 먹으려고 준비해 놓은 냄비요리를 가져온다. 미츠오가 지금 이런 거 먹을 때냐고 하자 그는 태평하게 말한다. 이혼은 최악의 결론이 아니라고. 진짜 최악은 가면 부부라고. 사랑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함께 사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이혼최고라고... 료의 입을 통해 나온 이혼찬가는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메시지였을 것이다.
다음날 미츠오가 단골라면가게에서 헤어진 아내 유카의 밝고 명랑한 성격을 칭찬한다. 아내의 그런 점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고. 결혼해서 한번도 느끼지 못하던 유카의 장점이 헤어지고 나니 보였다고. 결혼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다. 산속에서 산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주인도 지구를 떠나서 지구가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이라는 틀에 묶여서는 상대의 장점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떨어져서 봐야 보이는 것이다. 이혼하라는 게 아니다. 결혼 안에서 서로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거다. 결국 작가는 결혼이라는 형식에 가두지 않는 지혜로운 삶을 얘기하고 싶은 거다. 사랑하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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