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상임이사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어 성당 교회 종소리가 울렸다.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신호였다.

흰 연기가 오르기 전 연속해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 교황선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다섯 번째 투표 만에 흰 연기로 바뀌면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추기경들의 의견이 모아졌음을 알렸다.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런 사임에 이어 선출된 266대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76).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상 첫 아메리카대륙 출신이다.

새 교황은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택했는데 이는 새 교황이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청빈한 삶과 헌신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애초 교황 유력 후보군에 이름이 거론되지 않아 그의 선출이 의외라는 세계 언론의 반응이지만, 그는 이미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했던 2005년 콘클라베 당시 최종 투표에서 2위에 올랐던 경력이 있으며 교단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는 대주교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 자리에 있으면서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손수 요리를 하며 빈민가를 자주 방문하던 겸손하면서도 청빈한 성직자. 그의 노력으로 12억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기대한다.

콘클라베라는 독특한 방식의 비밀회의는 교황선출 때마다 화제를 몰고 온다. 시스티나 성당의 구조와 비밀회의의 형식, 투표자로 참여하는 세계각국의 추기경들까지 하나하나 뉴스가 된다.

그런데 올 교황선출에는 새로운 뉴스가 추가됐다.

콘클라베가 시작된 그 시간에 바티칸에서 검은 연기나 흰 연기가 아닌 낯선 분홍 연기가 피어 오른 것이다.

분홍연기는 가톨릭 교회의 여성 역할 확대를 요구한 일종의 시위였다. 여성사제서품회 회원들은 여성을 성직에 임명하라는 배지를 붙인 분홍 옷을 입고, 성 베드로 광장 일대를 돌며 남성으로만 구성된 추기경들이 교황을 뽑는 것에 항의했다.

프랑스 출신 페미니스트 여성 2명은 상의를 벗은 채 여성 사제를 요구하며 시위하다 교황청 수비대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이에 앞서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도 분홍 연기를 피우는 시위가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가 남성만을 사도로 뽑은 기록에 근거, 전통적으로 여성의 사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불문율은 2000년 동안 계속돼 왔다.

이번 콘클라베 행사도 남성 추기경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였다.

준비 작업에 참여한 여성은 의식에 쓰일 테이블보를 만드는 여성 재봉사들이 고작. 이러한 보수성에 대해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가톨릭 여성성직자협회는 수년 전부터 교황 승인 없이, 자체적으로 여성 사제 서품식을 거행해 10명의 여성 주교와 124명의 여성 사제를 임명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이 단체 회원의 신자 자격을 빼앗고 교단이나 종파에서 내쫓는 파문으로 맞서고 있다.

이들은 “가톨릭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 본래 뜻도 실현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바티칸에선 여성들이 유리천장이 아니라 한층 강화된 콘크리트 천장 아래에 있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이탈리아 옛 가톨릭교회는 여성에게 사제직을 개방하고 있다. 19세기 말 현재의 로마가톨릭에서 이탈해 독립한 이탈리아의 또 다른 가톨릭 종파는 기혼여성에게 사제서품을 했다.

개신교에선 이미 여성이 목회자가 되는 길이 어렵지 않으며, 천주교와 뿌리가 같은 성공회도 수년전부터 여성을 성직자로 임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 한국최초의 여성사제로 카타리나 수녀가 임명을 받았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고, 교회의 신자도 절반은 여성이다. 여성의 역할이 점차 늘어나는 시대에 남성 사제들만 결정권을 갖고 미래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여성사제 문제는 앞으로 가톨릭이 고민할 문제지만, 새 교황은 여성계와 소통하는 교황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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