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진 취재부 부국장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어떤 일에 부닥쳤을 때, 여건이 안돼서, 능력이 안돼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어서,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어서라는 스스로에게만 적용되는 합리적 이유불가피한 사정을 만들어 그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합리적 이유불가피한 사정은 냉철하게 따지고 보면 하기 싫다는 변명이나 궤변일 뿐이라는 말이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이 틈만 나면 외쳐대는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상습적 행위가 그러하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요즘 정치권의 화두다.

1995년 지방자치가 부활되면서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도입됐고, 2005년부터는 기초의원들에게까지 정당공천제가 적용됐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은평가는 지방자치 무용론이다.

주민 참여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본질로 삼아 부활한 지방자치가, 정작 주민의 참여를 차단하고 이로 인해 주민의 불신과 무관심을 증폭시키는 역기능만 낳고 있다는 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고 일관된 평가.

이같은 배경에 대해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은 정당공천제가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방자치 20주년을 맞았는데도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건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때문이라며 중앙정치 예속과 공천 잡음, 고비용 선거구조, 편가르기식 선거양상 등 각종 폐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정당공천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방자치의 성장 저해 요인을 정당공천제에 떠넘긴다.

과연 그럴까. 주민의 냉철한 평가도 그러할까. 정당공천제 폐지 이전에,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 의식부터 살펴보자.

주민들은 지방자치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지방단체장들에 대해선 도덕성·자질 부족 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고, 지방의원들에 대해선 전문성·도덕성 결여 등을 꼽았다.

지방단체장 중에서 비리로 중도하차한 사례는 민선 1~5128명에 이른다. 각종 비리로 사법처리된 지방의원 수도 같은 기간 1137명에 달한다.

정작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아니라, 지방자치 폐지일지도 모른다. 정당공천제 폐지보다 스스로 주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도덕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키우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말이다.

다시 정당공천제로 돌아가자.

설령 그들의 주장대로 정당공천제 폐지가 절실하다면 스스로 힘을 모아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될 일이다.

20년이 넘도록 탁자에 모여서 종이 한 장에 너도나도 이름 석자 적어놓고 정당공천제 폐지를 외친 것 말고 무엇을 했는가.

정당공천제의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의 당위성과 절대성을 주장한다면 스스로 당을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동안 수많은 결의문을 채택한 성과는 무엇인가.

진정 힘을 합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는 의지와 신념이 있다면 전국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집단으로 탈당할 각오는 없는가.

지방자치제도의 한계와, 중앙정치권의 기득권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그들의 말은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왜 명언으로 지금껏 회자되는 지를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자신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을 통해 스스로 투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투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투쟁할 각오도, 용기도 없다.

지방자치가 성장을 멈춘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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