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동이가 윗마을 선생님내외분을 찾아왔다. “아이구, 회장님 오셨구먼. 그래 사모님두 안녕하신가?” “선생님, 면구스럽게 왜 이러십니까. 오늘은 그냥 개인적으루 선생님 뵈러 왔습니다.” 재동인 짝패회 회장이다. 재동이 중학교은사인 황 선생내외는 짝패회 회원이다. 황 선생이 읍내 중학교에 처음 부임해 왔을 때 한 학교 동료여교사와 인생의 짝을 맺었다. 그러니까 교내커플이다. 이때 재동인 황선생반 1학년 학생이었는데 같은 반이었던 순이와 눈을 맞춰두었다가 훗날 짝을 이뤘다. 그러니까 이들 역시 교내커플이다. 황 선생내외가 정년퇴직을 하고 첫 부임지를 못 잊어 이곳에 새둥지를 틀었을 때가 3년 전으로, 그때 50중반이 된 재동이 내외가 황 선생내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재동인, 자기들처럼 중학교커플이 몇 더 있다면서 곧바로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해 다섯 쌍을 불러들였다. 이래서 결성된 것이 짝패회다. 그래서 재동이가 회장이 됐고 제 아내 순이는 총무가 됐으며 황 선생내외는 평회원이 된 것이다. “그래, 오늘 개인적인 용무라는 게 뭔가?” “중매 좀 서 주셔유.” “중매라니. 새장가가려구? 둘이 싸웠나?” “그게 아니라유 제 딸년이유. 지금 서른한 살이 됐는데 아직 시집을 못 가구 있어유. 그러니 선생님께서 중매 좀 서 주셔유.” 대학까지 나온 딸애가, 네 살 아래인 제 남동생은 벌써 결혼을 해서 네 살짜리 사내애까지 있다는데 고르는 것도 아니면서 여태까지라는 것이다. “서른한 살이라, 어디 다니는가?” “예, 읍내 끝자락에 있는 화학회사에 다니는데 제 말로는 그래도 제가 없으면 안 된다나요. 근처에 숙소를 정해 놓구 있으면서 주말엔 집에 옵니다.” “시집갈 시간이 없겠구먼. 아니면 눈이 높든가.” “아닙니다. 저두 애는 쓰고 있는데 그게 여의치 않나 봅니다, 그렇다구 제가 뭐 어디 알아볼 데가 있어야지유. 시골에서 농사만 짓는 놈이니.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뵌 겁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여기저기 교직에 오래 계셨으니 발이 넓어 아는 분들도 많으시잖어유.” “글쎄 그렇기는 하네만 벌써 현직을 떠난 지 오래인 데다 내가 워낙 주변머리가 없어 그런 걸 해봤어야지. 하여간 자네 여식이니 자네 내외 닮아 똑똑하고 싹싹하겠지 한번 알아는 보겠네. 하지만 너무 기대는 말게.” 재동은 적이 맘이 놓였다. 뭔가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존경하는 선생님 말씀이니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안 돼 급기야 연락이 왔다. “서른여덟짜리가 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나와 같이 퇴직한 교직동료 막내인데 대학 나와 청주서 컴퓨터루 자영업을 하네. 자리 잡느라 차일피일 늦어진 모양이야. 인제 자리가 잡혔대.” “좋아유 선생님, 일곱 살 차인데유 뭐. 요새 띠동갑짜리들두 많찮어유.” “그러면 양쪽 당사자들한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알아서들 한번 만나보라구 하지 뭐. 지들이 맘에 있어야 되는 거 아냐?”

그리고 2주일이 지났는데도 딸애는 아무런 말이 없다. “얘, 어떻게 된 거냐?” “아빠, 한 번 봐서 알아요 몇 번 더 봐야지.” 원 치사하게 핀잔만 먹었다. 그래서 계속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한 달이 좀 지나서 하루는, “아빠, 상견례를 하자는데요?” 하는 게 아닌가. “엄마, 아빠한테 인사두 안 시키구?” “양쪽이 그때 보시면 되지요 뭐 안 그래요?” 또 아무 말 못하고 재동은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요새는 그렇게도 하는 모양이네. 그러면 어떡할까 청주서 할까 여기 읍내서 할까?” “선생님이 정하셔유.” “그럼 말일세. 이번 일요일에 우리 집에서 하세.” “그쪽 사정두 있지 않을까유?” “그건 염려 말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재동은 내 일같이 서두르고 적극성을 보이는 선생님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마침내 양가가 상견례 하는 날이다. 재동이넨 온 식구가 총출동했다. “어서 오게나. 아, 이쪽이 신부 감이구만. 부모 닮아서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구먼!” “아직 도착들을 안 했나 보지유.” “다들 와 있네. 신랑감아 이리 나와 인사드려라!” 엷은 미소를 띠우며 신랑감이 나온다. 재동의 일가가 신부 감만 빼놓고 온 시선이 그리로 쏠리며 샅샅이 훑어본다. “부모님들은유?” “여기 있잖은가 사돈, 이 좋은 날 먼저 내 술 한 잔 받으시게!” “예, 사돈유?” “왜, 늙은 사돈이라 맘에 안 드는가?” 황 선생내외만 빼놓고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다. 그것도 잠시, 재동은 작정한 양 건네 온 술 모금 꿀꺽 삼키며 술잔을 공손히 건넨다. “그럴 리 있겄어유 사돈어른! 이 젊은 사돈 술잔도 한 잔 받으시지유!” 그러자 양가의 손뼉소리가 거실 안을 가득 메운다.

<박희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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