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 청양군 목면 부면장

일본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른바 사토리(さとり)세대의 탄생이다. 지난 2010년 니혼게이자이 기자 야마오카 타쿠(山岡拓)가 펴낸 <갖고 싶은 게 없는 젊은이들>이란 책이 화제가 됐었는데 인터넷 공간에서 이 책의 검색 키워드로 ‘사토리 세대’란 말이 등장한 것이 기원이다. 사토리는 득도, 자각을 뜻하는 일본어로, 8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10~20대 중반을 가리킨다. 세상은 늘 바뀌고 젊은이들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이 세대를 주목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심어놓은 소비 DNA에 반기를 들었다는 기특한 사실 때문이다.

사토리 세대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그들은 차를 타지 않고 브랜드 옷도 원하지 않는다. 스포츠를 하지 않으며 술도 마시지 않고 여행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애에 조차 담백하다고 한다. ‘힘들게 해외여행 할 거 없어. 국내에서 싼 온천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가난도 별로 나쁜 게 아냐. 유니클로 입고 편의점 도시락 먹고 적당히 살아가면 돼’라면서 태평하게 산다고 한다. 첨단 자본주의 시대에 물건 소유에서 놓여나는 젊은이들 소식이라니 드디어 자본주의에도 별종이 등장했다.

기성세대는 걱정스럽다. 일본사회의 정체를 이 젊은이들에게서 찾는다. 지금 젊은이에게 상승욕구가 없다는 것이 일본의 절망이라는 것이다. 항상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매진하는 삶이 지금까지 일본성장의 주역을 담당한 사람들의 공통적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상승지향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의 근간이다. 쓸모없는 젊은이가 늘어난 탓에 일본의 산업이 잘못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그래서 젊은이는 틀렸다는 기성세대의 생각은 좀 성급한 측면이 있다. 젊은이가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은 젊은이 탓이 아니고 포스트 산업사회의 만연된 소비행태에 염증을 느낀 반발 심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물건을 구입하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와 타인과의 차이를 확인하려는 과시소비다. 전자는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한 것이다. 식료품이라든지 화장지, 세제 등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어떤 불황이든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필품만을 소비하는 사회구조에서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보다 편리하고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세련된 상품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실용을 뛰어넘은 새로운 유행상품에 가치가 부여되고 그 가치를 동력으로 새로운 종류의 소비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행이나 브랜드에 기인한 타인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소비가 이른바 ‘기호적 소비’다. 기호적 소비란 상품의 기능을 넘어 이미지나 스토리를 누리는데 초점을 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침대에 걸터앉아 밥 제임스의 재즈 피아노를 들으며 하이네켄을 마시는’ 부류다. 자본주의는 대부분 이 기호적 소비 덕분에 오늘날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런데 성숙한 자본주의 일본에서 이제 그 기호적 소비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게 사토리세대의 등장이다. 물건을 사지 않는 젊은이는 기호적 소비에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된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물건을 구매하여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도모하거나 이를 통해 자기실현을 꾀한다는 구닥다리 발상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다.

현재 10대 후반에서 20대 정도의 젊은 부모들은 80년대의 버블기 동안 브랜드 소비에 춤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르마니 정장, 구찌의 비트 모카신 차림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 세대다. 부모세대가 물건을 사서 달성한 자기실현은 더 이상 새로운 세대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획득된 자기는 결국 초라한 '과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토리’들은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버블 붕괴까지 경험하게 된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아르마니나 구찌라는 고도의 상품센스를 가진 사람들이 ‘물건이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은 물건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물건 자체의 가치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구식 가치관에 따라 개발되는 제품, 선전되는 정보, 그런 것들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거다.

그들의 반 소비문화는 기성세대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룬 빛나는 득도다. 꼭두각시처럼 사는 게 지겹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남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삶의 목표라는 자기과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욕망에 더 이상 복무하지 않게 된 거다. 노회한 자본주의에 날리는 유쾌한 똥침아닌가. 사우나에서 찬물 한 바가지 덮어 쓴 것처럼 시원하다.
 
세계는 이미 끝 모르는 장기 불황시대에 접어들었고 앞으로는 더 이상 호황은 없으리라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불황에서 깨달은 지혜. 이웃나라 별종세대의 진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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