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본사 이사

논문표절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여배우와 방송인 스타강사 등 연예인들에 이어, 중앙부처의 고위 공직자들의 논문표절이 이야깃거리가 되더니, 드디어 인사청문회에 오른 인사들의 논문표절 문제가 정해진 순서처럼 잇따라 불거진다. 논문표절 문제는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잊혀질만 하면 툭툭 튀어 올라 이제는 새로운 사건이 발생해도 놀라는 대신 ‘또야?’할 정도로 불감증이 만연하게 되었다. 아니다. 아예 불감증을 넘어서서 표절을 이해하자는 분위기까지 일고 있다.
“쿨하게 사과했잖느냐.”
“대한민국 석박사들의 논문을 모조리 검증해보라, 표절에서 자유로울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마도 표절을 조사하면 물반 고기반일 거다.”
마치 속도가 정해진 도로에서 모두 규정을 어기고 과속을 하는데 어쩌다 단속에 걸린 사람만 억울하다는 식이다.
그런데 아니다. 표절은 누가 뭐래도 도둑질이다. 자신은 실제로 연구나 노력을 하지 않고, 남이 한 것을 그대로 베껴와 인용해놓곤 그것을 마치 자신이 한 척, 자신의 것인 양 거짓으로 속이는 나쁜 행위이다.
논문표절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된 데는 표절을 하면서라도 학위를 갖고 싶은 사람들의 욕심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그들이 학위를 사회적 장식물처럼 욕심낼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간판주의’ ‘학벌주의’의 사회현상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배우가 연기력으로 인정받으면 충분하지 굳이 석사 학위가 왜 필요한가.
공무원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그 경력을 쌓아가면 되지 굳이 학문을 연구하는 영역인 박사학위가 뭐가 필요한가.
물론 학창시절 공부할 기회를 놓쳤거나 뒤늦게라도 학문에 뜻을 둔 사람들이 공부가 좋아서  매달리는 것은 이해된다. 그렇다면 주경야독하며 내 실력으로 매달릴 일이다. 학위를 청구하는 논문조차 내가 쓰지 않거나 남의 논문을 이것저것 짜깁기해 학위를 얻은 뒤,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킬 스펙으로 쓰려는 욕심이 결국 요즘 같은 표절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간판주의 학벌주의는 심각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다.
가령 공직자가 임명되면 그 사람이 어떤 실력이 있는 사람인가를 말하기 전에 고향과 어느 대학 출신인가가 먼저 소개된다. 만일 그가 명문고 출신일 경우는 고등학교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고졸출신이거나 지방대를 나오면 평생 이력서에 그 출신성분이 따라다니고,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소위 말하는 명문대의 벽을 넘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학벌 세탁’을 위해 석사나 박사의 학위가 필요할 수 밖에 없고, 그런 목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다보니 쉽게 논문을 쓰기 위해 표절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대학들도 한 몫을 했다. 학문이 아닌, 학벌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대학원생들이 늘어나다보니, 대학별로 야간대학원 계절대학원 산업대학원 특수대학원 등 다양한 형태의 대학원을 경쟁적으로 운영하며 원생수를 늘렸다. 이렇게 양산된 대학원에서 누가 전공에 대한 공부를 충실히 하고 연구를 하겠는가.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 역시 형식적일 수 밖에 없다. 아예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원의 명성을 올리려고 유명인을 모시기(?)까지 한다. 자격 미달 학생의 입학을 허가해 수천만 원의 등록금을 챙긴 뒤 적당히 학위를 주고 졸업시키는 것이 관행처럼 된 것이다.
연례의식으로 반복되는 논문표절 의혹제기. 언제쯤 이런 뉴스를 안들어도 될까.
제도적으로는 ‘논문 사전 검증시스템’을 도입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벌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 예술인들은 작품으로, 연예인들은 연기로, 정치인들은 정치철학으로 인정받는 사회,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된다면 굳이 석사나 박사같은 사회적 장식품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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