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생생연구소장

창밖에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다가 사무실에 앉아 얼마 전 지인이 준 음악디스크가 눈에 띄어 컴퓨터에 넣어 틀어 보았다. 베토벤의 교향곡6번 전원이었다. 학교 다닐 때 무척이나 좋아해 어렵사리 녹음테이프를 구해 듣던 곡인데 사회에 나와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거의 음악을 듣지 않다보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컴퓨터로 들어 음질이 좋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들으니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음악을 들을 여유를 갖지 못하고 헉헉거리며 살고 있는 내 삶의 모습이 안쓰러워졌다.

그러나 모처럼의 감상적인 시간은 곧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최근 성상납이나 여러 얘기들이 갑자기 나오고 있는데 혹시 정부가 뭘 감추기 위해 그런 것 아니냐? 혹시 아는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우리 국민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 관심을 보이다가도 또 다른 흥미 있는 일이 생기면 앞에 있던 일을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덮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을 끌 다른 사건을 의도적으로 퍼뜨린다는 루머가 과거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이고 원칙과 신뢰를 모토로 하는 박근혜정부 하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성상납 동영상 건의 경우 다른 건으로 경찰이 수사를 하던 중 나온 동영상인데 마침 동영상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모부처 차관에 내정되자 불거진 것으로 그 사람이 차관에 내정되지 않았으면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무슨 다른 일을 덮으려고 그런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추측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누가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으려고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록 소수이지만 그런 시각으로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나 집권 여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편견에 바탕을 두고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비록 일부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정부를 불신하게 만든 과거의 정부와 정치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으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신뢰를 잃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회복하는 데는 수십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 진나라 때 상앙이 개혁을 추진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말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나무 기둥을 성문 밖으로 옮기면 거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모두들 그렇게 쉬운 일에 정부가 거금을 줄 리가 없다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침 한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기둥을 옮겼는데 실제로 정부에서 거금을 주는 것을 보고 정부의 말을 믿게 되었고 그러한 믿음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어 마침내 중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박근혜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TV토론에서 정관정요를 읽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당태종은 정관의 치라 불리는 훌륭한 정치를 한 군주다. 그는 국민은 물이요 왕은 배라고 했는데 이는 국민이 평안하면 왕도 편안하지만 국민이 행복하지 않으면 배인 왕도 풍랑 때문에 뒤집어 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정부가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누누이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생각이 근저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정부가 국민을 속일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기득권층에게 불이익을 줄지언정 일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신뢰를 쌓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조그만 일이라도 하나씩 하나씩 믿음을 주어야 한다. 정부 출범 초기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다소간 실망을 주기는 했으나 아직도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은 공고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국민들의 신뢰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게 국정운영을 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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