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재산공개 대상 고위공직자의 30%가 직계존비속의 재산 고지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제도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와 각 광역지방자치단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 주말 일제히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공직자 재산변동사항을 공개했다.
충북의 경우 재산 신고 대상자 총 182명 가운데 72%인 131명의 재산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이색 재산도 있었다.
오수희 청주시의원의 배우자는 1300만원짜리 동양화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최용수 충주시의회 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물 조각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재산내역을 밝혔다. 이 조각상의 가격은 2000만원에 달한다.
이종숙 청원군의회 의원은 500만원짜리 진주목걸이를 갖고 있다고 신고했으며, 윤해명 증평군의원은 재산 변동 내역에서 예금 1억4000만원 외에 2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다고 신고해 주목받았다.
청주시의회 김성규 의원은 ‘남주동’이라는 상표권을 갖고 있고, 8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공개된 재산변동 내용 가운데 주목을 끄는 부분은 보유재산액수만이 아니다.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고지 거부’ 비율이 있다.
충북지역의 경우 20여명이 독립생계유지 등의 이유를 들어 자녀나 손자손녀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특히 도의원의 경우는 10명 중 4명꼴로 직계의 재산상황을 신고하지 않았다.
연영석 충북도립대총장은 장남, 김광수 충북도의장은 아들(2명)과 손자, 강현삼 도의원은 모친, 권기수 도의원은 장·차녀, 김동환 도의원은 장남과 손자·손녀, 김봉회 도의원은 장·차남과 손자·손녀, 김양희 도의원은 장남, 김영주 도의원은 부친 등에 대해 고지 거부했다.
박상필 도의원은 장남과 손자·손녀, 박종성 도의원은 부모, 손문규 도의원은 장남, 유완백 도의원은 차남과 손녀, 윤성옥 도의원은 장남, 임현 도의원은 장·차남과 손자손녀, 전응천 도의원은 장남 등이다.
시장·군수 중에서는 최명현 제천시장, 이종윤 청원군수, 정상혁 보은군수, 유영훈 진천군수, 김동성 단양군수 등이 자녀와 손자손녀에 대한 고지를 거부했다.
공직자윤리법은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있는 공직자의 가족이 사생활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로, 직계 존비속 가운데 피부양자가 아닌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재산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고지거부제를 두고 있다.
그러나 끈끈한 핏줄로 맺어진 가족문화를 지닌 우리나라의 정서상 직계존비속의 고지거부제가 공직자의 재산은닉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자체가 사유재산과 사생활에 대한 공개를 근간으로 두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사유재산과 사생활 침해와 같은 논란의 여지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시행되는 것은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직무의 공정성을 확보토록 하기 위함이다.
공직자 재산등록제나 고지거부제 모두 공직자들을 위한 제도로서 공직자로 하여금 청렴하고 결백한 공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제도로 인한 불가피한 침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각각의 제도는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때 그 취지를 살리고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서로를 보완해줌으로써 상생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들이 공직자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서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꼴이 돼버렸다.
공직자 재산등록제도는 깨끗한 공직문화를 조성,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만큼 계속해서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운영해 나가가야 한다.
고지거부제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공직자의 성실한 재산신고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오용되는 일이 없도록 대안 모색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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