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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느림의 미학
  • 동양일보
  • 승인 2013.04.01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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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C8’(?)빨리빨리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안 좋은 접두사인 줄 알았다는 고백을 듣고 실없이 웃은 적이 있다.

빨리빨리는 한국문화의 대표적인 어휘가 되어 버렸다. 그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나치게 빨리 가다 보니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와 같은 대형 건축물이 붕괴되는 일도 경험하였다.

부끄럽지만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와서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슬로우 푸드라는 말도 새삼 다가온다.

가난한 사람들만 먹던 죽이 누구나 먹는 대표음식으로 자리잡기도 했고, 패스트 푸드점을 능가할 정도로 많은 지점을 양산 하고 있다. 느림의 미학은 성급한 현대인에게 차분한 안식을 생각하게 해 준다.

지난해 11월 첫 주 수요일에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주관으로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대회를 개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응모하였고, 유학생과 다문화가정으로 나누어 기량을 뽐냈다.

그 중 두 가족을 선정하여 본국에 다녀올 수 있는 비행기 표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지금이 3월이니 꽤 오랜 기간을 흘렀다고 생각한다. 11월부터 출국한다고 하더니 12월이 넘어서 언니가 대신 가도 되느냐고 물어왔다. (특이하게 자매가 한 가정에 시집와서 언니면서 동서 관계다. 수상자는 동생이었다)

스폰서와 연락을 취하여 가족이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언니 가족이 출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지냈다. 방학 중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조카가 아파서 힘들게 다녀왔다는 것이다.

아마 금년 1월에 출국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갔다 왔다는 증거물(?)은 보내줘야 도와주신 분들도 면목이 설 것 아니냐고 했더니 베트남 가서 찍은 사진과 비행기 표를 가지고 오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3월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꿩 궈 먹은 소식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참으로 느리다.

이 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두 팀이 선정되었으니 한 팀이 더 있다.

그 팀 역시 사진을 아직도 보내주지 않고 있다.

남편과 사별하였으니 아마도 자녀와 함께 다녀왔을 텐데, 사진 몇 장 이 메일로 보내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물론 시골이다 보니 인터넷도 잘 안 되고 컴퓨터를 잘 할 줄 몰라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토박이 한국인이었으면 아마도 본국에 다녀오자마자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들고 왔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문화의 차이를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동남아 사람들은 느려도 정말 느리다.

그러면 중앙아시아는 안 그런가? 마찬가지다. 한국의 문화에 익숙한 필자는 가끔 정신이 없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할지 모르겠다. 인도네시아사람도 느리고, 터키 사람들도 느리다. 태국인도 무지하게 느리다.

한국인 같으면 1주일이면 끝날 일을 이들은 반 년이 더 걸린다. 기다리다 세월 다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답답하다. 참으로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다. 그래서 초기에는 본국에 가는 비행기삯도 돈으로 주다가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하면 돈만 받고 안 간다고 하여 표를 사서 보내주기로 하였다. 그 분들의 말로는 11월에 출국하는 것과 1월에 출국하는 것은 단가가 다르다고 한다. 그래도 약속한 것이니 돈이 더 들어가더라도 표를 구해서 주겠노라고 하였다. 느림을 체험한다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빨리빨리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에게 느림의 진수를 보여주는 결혼이주여성들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 필자의 경우 외국인과 잦은 만남으로 인해 이력이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답답한데, 겪어보지 않고 함께 사는 남편들이나 주변인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해 본다. 빨리 느림에 적응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가끔은 죽을 먹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깨우쳐야 할까 보다.

<중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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