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을 하다보면 특별한 약속을 잡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언제나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성당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부활절이다. 필자도 가톨릭 신자로서 성지주일날 좀 일찍 성당에 가서 성가대 연습을 해야 했다. 그날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전 성당 마당에서부터 미사가 시작되는 좀 특별한 날이었다.
아침에 성당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불길한 전화벨소리.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송아지가 탈진이 되어 다 죽어간다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다녀올 수는 있겠지만 변수가 생길 경우 입장이 곤란할 것 같아 성당을 다녀와서 점심때 가겠다고 했다. 정 급하시면 다른 병원이라도 우선 알아보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5분도 안 되어 다시 전화가 와서 걱정을 하신다.
그때부터 전쟁과 같은 상황에 접어들었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왕진 준비를 하고 출발을 했다. 가는 도중에 그러면 안 되지만 전화를 걸어 수액을 데울 뜨거운 온수와 송아지를 바로 치료할 수 있게 묶어 두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농장에 도착해 수액과 주사치료를 했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수액을 맞더니 송아지가 일어서서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전쟁!
부랴부랴 성당으로 향하는데 아까 와는 비교도 안되는 음울한 전화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전화내용이 기가 막히다. 암소가 새끼를 낳지 못하고 있는데 얼굴의 입과 발이 하나만 나온다는 것이다. 어깨가 하나 걸린 것이다. 시간을 보니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시간이 되지 않는다 다른 수의사를 부르셔야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왜 못 오냐” 고 물으셨다.
성당에 가야한다고 하니까 “하느님이 죽어가는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성당에 오기를 원하시냐”고 따진다.
하지만 난산처치를 하는 데는 시간이 최소한 한 시간 이상 걸리는데 지금 농장으로 가면 오늘 미사는 못 보는 것으로 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전화를 받지 말걸 후회가 밀려왔다.
생명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핸들이 꺾어 졌고 화살기도를 바쳤다. 당신이 벌이신 일 당신이 알아서 하시라고!!
농장에 도착하니 어미는 초산인 데다 송아지는 매우 굵은 다리를 가져 난산이 예상되니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어미 소의 꼬리뼈에 국소마취를 먼저 해야 한다. 힘을 주지 않아야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송아지를 어미 뱃속으로 다시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있던 필자는 둘둘 옷을 걷어 부치고 뱃속까지 손을 밀어 넣고 송아지의 나머지 한쪽 다리를 찾았다. 속으로는 계속 기도하면서….
생각보다 송아지 다릴 빨리 찾았고 두발과 머리의 위치가 정상적으로 놓이게 되자 이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어미가 힘을 주었고 송아지가 내 손위로 떨어졌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씻고 성당으로 가니 미사 시작 15분 전.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주셨다. 부활주기를 맞아 생명의 중요성을 다시 알게 해주신 유난히 바빴던 성지 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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