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간의 불꽃 같은 사랑대신 냉정한 아련미가 돋보이는 글

 

 

몇몇의 유능한 젊은 소설가들을 제치고 이미 상당한 평가를 얻고 있는 중견작가 이혜경씨에게 14회 무영문학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수상작은 최근에 간행된 너 없는 그 자리라는 소설집이다.

이 작품집은 수록작 대부분이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으나, 그것들은 뜨거운 열정이나 삶의 불꽃 아닌 아련한 연민이기 일쑤다.

작가와 같은, 말하자면 동일체의 소설화자로 여성을 곧잘 내세우는 이씨의 소설들에서 여성은 사랑을 원하고, 그 사랑으로부터 배신을 겪고, 다시 또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회로 속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 사랑에 절망하거나 원망하거나 혹은 슬픔이나 분노로 주저 않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달관의 모습이나 운명론의 자리에 있지도 않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한갓되이 풀잎만의 말미에 나오듯이 그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인데, 굳이 이름 붙인다면 현실주의자라고 할까.

그러나 그 사이에서 빚어진 연민과 세상을 향한 겸손이 이씨의 소설을 만들어내는 듯이 보인다.

이혜경 소설은 때로 사나운 현실전복으로, 때로는 우울한 열패감으로 다가오곤 하는 우리 여성문학에서 특이한 미덕을 지닌다.

얼핏 평범한 전통적 분위기 속의 여성상인데, 그것이 차라리 디지털 페미니즘의 범람 가운데에서 오롯하면서도 새삼스러운 신선감을 준다.

연애, 결혼, 출산이 포기되었다는 소위 3포시대를 살아가는 가정의 내부를 갈등 아닌 균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사랑이다.

세세한 관찰을 통해 따뜻한 가슴으로 삶을 껴안으면서 단정한 문장을 구사하는 이씨의 문학은, 흔들리는 근대, 방향 잡히지 않는 후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하게 읽혀질 필요가 있다는 데에 심사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심사위원: 유종호·김주연·김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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