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그 자리

직장인인 한 여자가 아프리카로 파견된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녀의 일상이며 그 속에 자주 드러나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 그 남자를 만나서 가까워지는 과정 등이 애절하게 드러난다. 세상에 둘도 없는 듯한 연인으로 보이던 그들. 그러나 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그를 서울 시내에서 우연히 보게 된 그녀는 그제야 편지 속에서 자기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스토커인 그녀를 견디다 못해, 그녀를 따돌리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한갓되이 풀잎만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학원의 경리로 일하는 여자 기혜. 세상천지 의지할 데 없는 그녀에게, 새로 온 엘리트 학원강사 M은 친절을 베풀고 그들은 학원 동료들이 모르게 비밀스러운 연애를 한다. 그러나 M은 그녀를 버리고, 부유한 학원장의 딸과 결혼한다. 학원에서 밀려난 그녀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다가 속기사가 되어 녹취록을 푼다.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던 남자의 배신과 같은 배신은, 그녀가 푸는 녹취록엔 아주 흔한 일이다. 어쩌면 배신 또한 삶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그녀,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북촌

가난하나 성실한 남자. 어릴 적 부유했던 동창에게 사기를 당해 그가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외국에 나간 친구의 집을 지키고 있다. 대도시의 한옥마을인 북촌. 어느날 그 집에 새처럼 뛰어든 한 여자에게 애틋한 사랑을 느끼고 연인이 된다. 대도시의 한옥은 일종의 섬처럼 그들만의 세상이 되지만, 여자는 다시 새처럼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축제

발리 섬의 문학 페스티벌을 취재하러 온 여자. 그녀는 오래전, 잡지사를 그만두고 이 나라에 어학연수하러 온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소요사태 때문에 귀국하던 비행기에서 옆자리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자상한 남편과 안온한 가정을 꾸리던 그녀는 어느날 사촌의 결혼식에 갔다가 어릴적 그녀를 성폭행한 친척을 만난다. 그 만남은, 그녀가 묻어두었던 상처의 뇌관을 건드려 공황에 빠지게 하고, 결국 남편과도 별거하게 한다. 그러던 참에 옛 동료의 제안으로 온 발리는 그녀의 기억 속에 남은 평화로운 섬이 아니었다. 몇 차례 폭탄 테러를 겪은 섬사람들이 안고 있는 상처가 그녀의 상처와 중첩된다.

감히 핀 꽃

언니가 동생에게 전화해서 시시콜콜 시집 이야기를 한다. 일찍이 바람 나서 집을 떠난 시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돌아왔다. 혼잣몸으로 자식들을 가르친 호랑이 시어머니는 남편이 돌아온 것만도 고맙다는 식이다. 돌아온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힘들까봐 간병인을 쓰겠다고 한다. 간병인은 참하고 지성스럽다. 온식구들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칭찬에 인색한 시어머니도 그녀를 칭찬한다. 그러다가, 그 간병인이 다름 아닌 시아버지와 함께 살던 여자라는 게 드러난다. 누가 봐도 어이없는 일,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의 입장에선 더없이 애틋한 사랑이었다. 그 일을 겪으면서, 평범한 주부였던 언니는 혼란스럽다. 가족들에겐 어이없고 분한 일이, 다른 쪽에서 보면 애틋한 순애보라는 것에.

금빛 날개

무책임한 부모 덕분에 가난하고 수치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한 남자.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의사가 되고, 부유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서 상류층으로 진입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게 급선무였으므로, 그에게는 인간적인 감정 같은 게 깃들 수 없다. 그가 올린 병원 건물은 그의 성채다. 그가 유일하게 애착을 갖는 대상은 큰아들이다. 큰아들이 군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간 날, 한밤중에 음악을 듣던 그에게 밖에서 병원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업무시간이 지났으므로, 그는 위급한 환자라 해도 돌볼 마음이 없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밤길에서 강도를 만난 큰아들이 문을 두드렸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낡은 이발소 이발사 갑선.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맡긴 두 동생은 성실한 갑선과 다르게 사고뭉치다. 혼자서 검약한 삶을 꾸리던 갑선은 동생들이 벌인 사고를 수습하느라 허덕인다. 그러던 갑선이 변했다. 해외여행을 간다고 가방을 꾸리고, 동네 어른들에게 밥을 사고. 갑선을 아끼던 지물포 사장은 처음 갑선이 무슨 큰 행운을 안은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갑선은 돌아버렸고, 그러자 현실의 무게를 벗고 행복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갑선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면서, 미쳤을 때의 그 행복은 풍선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검은 강구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이주한 사람들. 고향을 떠나 물 설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던 그들은 해방이 되었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보다 먼저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들을, 그들의 나라는 기억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데려가줄 배를 기다리는 사할린 교민의 절절함, 그러나 끝내 오지 않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해풍이 솔바람을 만났을 때

사회생활에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지 못한 여자 솔바람은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재택근무자가 된다.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 그리고 세상의 흐름과 한박자씩 어긋나는 그녀에게, 온라인은 신세계나 다름없다. 그녀가 온라인에 올린 글은 인기있고, 그녀는 처음으로 주목받는 기쁨을 누린다. 온라인 카페에서 만난 해풍을 진심으로 사랑한 그녀, 그러나 해풍은 흔하디흔한 사기꾼이었다. 사기치고 사라져버린 해풍은 결국 외곬수인 그녀의 집념을 당하지 못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