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훈 산남동천주교회 주임신부·교육학 박사

개그 콘서트의 ‘어르신’이라는 프로가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다.
모든 질문의 귀결은 “소고기 사 묵겠지” 이다.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이 유행어가 주는 의미가 크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우리시대의 융통성 없고 맹목적인 교육을 비꼬는 부정적 풍자로 해석했다. 다양성보다는 일방성을, 또 너도나도 똑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네의 교육과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데니얼 핑크’가 다녀갔다.
그는 한국교육이 ‘채찍과 당근’식 보상시스템으로 창의력과 감성, 공감능력을 갖춘 전인적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현재의 한국교육이 창조 경제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그의 저서 ‘드라이브’에서 ‘채찍과 당근’ 방식은 동기부여에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도 위험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해줄게’라는 조건부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하며 자녀를 재촉한다. 이 방법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반복적 과업에서는 통할 수 있어도, 더 많은 판단력, 창의성, 개념적 사고방식, 혁신이 필요한 과업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인생이 무얼까? 사람은 삶의 궁극적 목적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데, 수단들을 붙잡고 목을 맨다. 동·식물은 생명을 지닌 목적이 분명한데, 정작 위대한 인간만이 맹목적이고 물질적 소유에만 급급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출세하고 돈 벌면 그것이 목적인가보다 하고 살며, ‘기분 좋을 때 소고기 사먹는 것’으로 인생을 귀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쯤 되면 다른 피조물에 비해 더 나은 것이 없으며, 참으로 인생은 비참하게 끝을 맺을 것이다. 솔직히 이런 귀결로 살다가 비참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풍조가 만연된 것도 ‘당근과 채찍’이라는 동기부여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교육시스템 때문이다.
성숙해야 할 어른마저도 ‘인생이 무얼까?’, ‘인생의 목표가 무얼까?’라는 참 목적적 인간으로 살아갈 기초적인 철학적 물음이 결여된 채 사는 것은 아닌지. 나는 데니얼 핑크가 제시한 교육철학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교육의 효과를 보았다. 학생들에게 공부를 못한다고 탓하지 않고, 그들의 잠재력을 키워주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했고, 그들이 발견한 동기부여가 창의력과 공감능력 등을 발휘하여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개념시대’를 열어주었다고 자부한다.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계절이 철 따라 아름답게 변하듯,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주자, 목적적 인간이 되어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 모든 질문의 귀결이 대세가 되어버린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 하는 그런 인생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는 그들을 도식적인 교육과정에 고정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 움직이도록 했으며, 넉넉하게 주어진 자유를 학생들이 누려보게 함으로 자발성과 자주성을 길러 네트워크를 구축한 글로벌한 인재로 키워냈다. 그들 중 무려 35명이 지식을 조합하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으며 세계 속에서 커가고 있다.
한 학생은 고 1부터 장래의 희망이 여성 축구해설가라고 했다. 그 학생은 학교생활에서 축구 빅게임이 있는 날이면 밤늦도록 관전했고, 나는 다음 날 기숙사 식당에서 그 학생으로부터 관전평을 듣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런 그가  졸업 후 홀로 보따리를 싸들고 로마로 유학을 떠났고, 나는 그 당당함이 학교 교육의 철학에서 나왔다고 본다. 틀림없이 이 학생은 미구에 레드오션에서 허덕이는 학생들과 달리, 블루오션의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할 것이고 행복한 미래를 살 것이라는 길한 예감이 든다.
우리나라는 학력수준이 높은 훌륭한 인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는 창의적이고, 여러 학문분야에 능통하며,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세상에 기여하고, 목적의식을 지녀 도전하는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학교교육을 탈바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주체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나름의 인생관을 새롭게 정립하면서, 삶의 주체인 학생들이 목표의식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성숙함으로 도와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소고기 사 묵겠지’라는 똑같은 귀결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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