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논설위원, 소설가>

 금연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흡연자들은 날마다 눈총을 맞으며 산다. 권총 말총 눈총 중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지만, 사람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만큼 무서운 게 눈총이다. 곳곳이 금연구역으로 지정 되거나, 금연딱지가 붙어있다. 아닌 곳은 골목길이나 허허벌판, 물 가운데뿐이다. 그러나 거기서도 담배를 피우면 역시 눈총의 저격대상이다.
 꺼내들면 옆 사람에게 한 대 권하는 게 담배 인심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닌 담배 남의 눈에 띄기만 해도 ‘아직도 피워?’ 타박과 함께 눈총을 받는다. 가히 용서받지 못할 중죄인이요 인류건강을 해치는 공공의 적이 된 형국이다. 그래도 아니라고 들이댈 구실이 없다. 정부나 비흡연자들이 주장하는 금연정책에 반론을 제기할 용기도 없는 터. 누군가가 공론장에서 금연정책을 비판하고 끽연권을 주장했다가는 말총, 눈총의 집중사격을 받을 판이다.
 설 자리가 없는 ‘애연가’, 지금 분위기로는 그런 애칭(?)을 붙일 처지도 못 되니 그냥 ‘흡연자’라고 하자. 그 흡연자들을 벼랑으로 강하게 몰아붙이는 게 두 번째다. 전에도 명칭을 바꿔가며 소리 없이 담뱃값을 올리긴 했었으나, 이번처럼 왕창인상을 시도한 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국민건강과 사회비용 절감을 구실로 대폭인상을 시도했다가, ‘세수증대’를 위한 핑계라는 반대여론에 부딪쳐 소액인상으로 그쳤었다. 헌데, 이번엔 그 압박강도가 훨씬 높다. 흡연자는 예비 실화범이라는 전제하에 ‘화재유발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가세, 눈총 맞고 사는 흡연자들을 아예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갈 형세다.
 무산되긴 했지만, 2005년 소주값 인상을 시도할 때도 구실은 비슷했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건 단골 메뉴였고, 알콜중독자 증가에 따른 사회적비용, 음주사고로 인한 사회질서문란이, 소주세율을 출고가의 35%에서 72%로 왕창인상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담배도 소주도 살기 힘들고 속 타는 서민들이 애용하는 기호품이다. 근심걱정 없고 속 태울 일없는 사람들은, 태우던 담배 끊기도 쉽고, 소주 제쳐놓고 양주마시며 회포를 풀 수도 있다. 그러나 쪼들리고 고달픈 서민에겐 담배 소주가 해우제(解憂劑)요 위안물이고 벗이다.   또 하나,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담뱃값이 너무 싸다고 한다. 그러니 흡연자들에게 담뱃값을 곱쟁이로 올려 받아도 (말똑)싸다는 얘기다. 현재의 담뱃값에는 생산원가(원료비, 감가상각비, 인건비)에 생산자 판매자 이윤과 유통비 다 들어가고, 각종 세금(부가세, 소비세, 교육세, 건강증진부담금, 폐기물부담금)이 포함 됐다. 근거 제쳐놓고 외국과의 단순비교로 물가를 책정하는 나라는 없다. 그런 논리로 국가경제를 운영하는 나라도 물론 없다.
 담배연기는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 더 해롭다.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실화위험이 크다. 그래서 각종 사회비용이 높아지니 금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담뱃값 왕창인상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한 구석에 제쳐놓은 다른 목적은 없는가? 세수증대에도 이만저만한 목적이 있다고 하면 끽연가들이 ‘우리가 봉이냐’고 항의시위라도 할까봐 제쳐놓은 것인가? 
 흡연자를 비흡연자에 대한 가해자나 잠재적 실화범으로 몰아붙여, 끽연권 따위의 허튼소리 못하게 입을 막자는 의도라면, 좀 잔인한 발상이다. 차라리 세수확대로 청소년금연교육예산을 확대, 흡연인구 발생의 최소화 방안을 강화 할 테니, 그 몫을 더 부담하라, 그렇다면 끽연가들도 끽소리 못하고 수긍할 것이다. 담배가 중독성 강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니 ‘중독차단’보다 청소년기의 ‘최초 접근차단’이 흡연인구감소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백해무익의 독이라는 걸 알면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남의 눈총 받으면서, 그래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권리는 아니라도 최소한의 편의를 허용하는 아량은 필요한 것 아닌가? 경작자 근로자 일자리에 세수(稅收) 늘리고 국가전매품으로 공급하면서, 그 소비자를 ‘공공의 적’처럼 비난하거나 잠재적 범죄자로까지 매도하는 건,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금연했다가도 속 끓고 답답한 일 생기면 다시 빼어 무는 담배. ‘니코틴’이 그렇게 무섭지만, 잠시나마 심신의 안정 효과를 얻게 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 때문이다.
 근심걱정 없고 스트레스 안 받아 술 담배 없이도 느긋한 세상이라면, 공공의 적으로 눈총 받는 ‘흡연죄’ 안 짓고 오죽 좋을까만. 세상이 술 권하고 담배 물게 하는데, 그게 죄라면 쌓이는 답답증이 더 큰 병 되지 싶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