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2009년 ‘슈퍼스타K’(Mnet)가 인기를 끌면서 여러 방송에서 가수 선발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상파에서도 ‘위대한 탄생’(MBC), ‘K팝스타’(SBS) 등 유사한 프로그램이 경쟁적으로 편성되었다. 아마추어 밴드들이 경쟁하는 ‘TOP밴드’(KBS2)나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 키즈’(Mnet)처럼 차별화된 프로그램도 있었다. 하지만 영상을 중시하는 TV라는 매체의 특성상 참가자의 외모나 화려한 퍼포먼스가 부각되면서 정작 중요한 ‘가창력’은 뒤로 밀리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음악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방점을 둔 새로운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시즌2가 진행 중인 ‘보이스 코리아’(Mnet)는 심사위원들이 아예 뒤돌아 앉은 상태에서 예선을 치른다. 심사위원들은 오로지 참가자의 노래만 듣고 평가한다.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네덜란드에서 개발한 것으로 미국에서 판권을 수입해서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말 파일럿으로 방송되었다가 3월 16일부터 정규편성된 ‘히든싱어’(JTBC)는 방송 내내 ‘듣기’에 집중해야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집에서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조차 참가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노래를 들어야 한다. 그것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창하는 것이 아니라 블라인드에 숨은 6명의 출연자들이 한 소절씩 이어 부른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은 그 노래를 부른 진짜 가수이고 나머지 5명이 최대한 똑같이 부르는 모창능력자들이다. 스튜디오에 나온 100인의 청중평가단은 오직 노래하는 소리만 듣고 숨어있는 진짜 가수, 바로 히든싱어를 찾아내야 한다.
  1라운드가 시작될 때만 해도 평가단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스튜디오는 술렁대기 시작한다. 6명이 이어 부르는 것인데도 가수 특유의 음색이나 발성은 물론 숨처리와 바이브레이션의 섬세함까지 마치 한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똑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평가단은 이 가운데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출연자에게 투표를 하면 된다. 블라인드가 열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등장하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최다득표자는 탈락하고 남은 사람들은 또 다시 경연을 시작한다.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긴장감은 더해진다. 진짜 가수가 중도에 탈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정현에게 직접 곡을 써준 유영석이나 성시경과 10년 이상 작업한 윤종신도 진짜 가수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절대 가성의 소유자 조관우의 목소리는 아버지 조통달 명창도 찾지 못했다. 국민 록커 김종서조차 1라운드부터 모창능력자들보다 많은 표를 받더니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불과 4표차로 모창능력자를 어렵게 물리쳤다.
  ‘히든싱어’는 전형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창력 있는 가수들의 주옥같은 옛 노래들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감동과 오직 귀로만 진짜와 가짜를 찾아내야 하는 흥미진진한 요소가 합쳐진 기발하고 묘한 매력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높다보니 처음에는 ‘외국 포맷을 수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해외 방송사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로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도 프로그램의 수준을 높이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선발된 모창능력자들은 이후에도 평균 3주 가량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가수의 창법은 물론 목소리의 주파수 대역까지 유사하게 맞춘다고 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롤모델로 삼아 힘들고 지칠 때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견뎌냈다는 출연자들의 사연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무엇보다 ‘히든싱어’는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소리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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