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하루는 휴대폰에 문자가 올랐다. ‘당신,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마누라 두고 그래도 되는 거야?’ 이게 끝이다. 발신처를 보니 서울지역으로 생소한 전화번호다. 상달 씨는 그냥 피식 웃어 넘겼다. 누가 잘못 보냈을 거였다. 그런데 이튿날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를 봤으면 무슨 반응이 있어야지 당신 그렇게 떳떳해?” “여보세요, 전화 잘못 건 것 같습니다.” “당신, 장상달이잖아. 왜 이래 이거, 이실직고하고 흥정을 해야지!” “아니, 당신 누구요?” “나, 당신 불미스런 비밀 다 알고 있는 사람이야. 하여튼 한번 연락해!” 그리곤 뚝 끊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자신의 이름까지 어떻게 알고 있으며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불미스런 비밀이라니? 상달 씨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심상치 않아 보여 묻는다. “여보, 모르는 사람 같은데 당신을 협박하고 있는 거예요?” “모르겄어 글쎄. 내 이름까지 대면서 불미스런 비밀을 다 알고 있다는 거야.” “그거, 그거 보이스피싱인가 뭐예요. 그 사람들 당사자 이름은 고사하구 온 집안 식구들 신상까지 훤히 꿰뚫고 있대요. 속지 말아요.”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좀 맘이 찜찜해.” “왜, 그럼 당신 나 몰래 혹 불미스런 일 한 것 있어요?” “이 사람이!” “그런데 왜 그래요?” 두 사람은 서로가 그런 불미스런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안다.
 두 사람은 이날 이때까지 외박을 딱 두 번 했다. 한 번은 둘이 결혼한 때였다. 30년 전 일이다. 신혼여행을 온양온천으로 갔다. 호텔이라는 델 들어갔다. 초야를 치르려는데 이불이 없다. 종업원이 불려와 시트를 벗겨 보이고서야 그게 덮는 것임을 알았고 서로 처다 보며 열없어했었다. 또 한 번, 그러니까 두 번째 외박은 올 2월 초이다. 결혼30주년 기념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보, 어디로 갈까?” “당신 좋은 데루 해요.” “결혼 땐 내가 정했으니 이번엔 당신이 정해봐.” “그럼, 옛날 추억두 살릴 겸 온양온천으루 또 가 볼까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옛날추억이라면 난 호텔 시트사건이 제일로 떠오르는데 당신 생각 나?” “두 어수룩이 멍청이가 똑 같았지요 뭐. 하지만 그때 그 일 때문에 당신을 전적으루 지금까지 믿어 오는 거예요.” “허어, 그건 나도 같지.” 두 사람은 그 일을 아직도 쑥스러워했다. 상달 씨는 이 30주년 여행계획을 시집장가 간 두 아들딸에게 알렸다. 딸이 반겼다. “엄마 아빠, 아주 멋있는 계획이에요. 기념으루 우리 남매가 두 분 옷 한 벌씩 해드릴게요.” 그리곤 딸은 제 아버지한테 구두, 양복, 와이셔츠, 넥타이를, 아들은 제 엄마 구두, 투피스, 코트, 머플러 등 양장 일시 벌을 해 주었다. “당신 그렇게 차려입고 화장까지 하니까 나하구 다섯 살 차이가 아니라 열 살 아래로 보여 쎄컨드로 알겠어.” “이 양반이 별 싱거운 소릴. 그럼 당신은 한다하는 한량예요?” 이렇게 집을 나섰는데 아내는 인제 뭐가 쑥스럽다며 남편과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간다. “원 남이 보면 부부로 보지 않고 오해하겠네. 둘이 못 갈 데 가는 거야? 빨리 와!” 마침내 목적지 터미널에서 내려 인근 커피숍이라는 델 들어가 비싼 걸로 폼을 잡고 나와 택시를 잡았다. “그 호텔은 지금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온천근방 호텔에서 내렸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에게 먼저 들어가 수속을 밟으라고 한다. “뭐가 또 쑥스러워서 그랴?” “곧 따라갈 테니 어서 먼저 가요.” 방 수속을 끝내니 아내가 왔다. 둘은 또 차 한 잔씩을 했다. 무슨 찻값이 한 잔에 8천 원씩이다. 그리고 또 비싼 저녁식사도 다정하게 마주 앉아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이들의 외박경력의 전부이다. 이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불미스런 비밀이라니. “여보, 그거 보이스피싱 협박이라니까요. 내 말 듣구 신경 쓰지 말아요!” 그래서 상달 씨는 무시해 버렸는데 그래도 매일 한 번씩 전화가 왔다. “아니, 당신 그렇게도 당당해?” 그러더니, “좋아, 당신 자식들 앞에서, 특히 당신 마누라 앞에서 당신 쪽팔리지 않게 하려고 좋게 해결하려 했더니 할 수 없군. 내 곧 증거품을 보내 줄 테니 알아서 해!” 하고 최후통첩 같은 협박을 했다. 그랬는데 정말로 며칠 후 우편물이 왔다. 노란 4각봉투였다. 상달 씨는 내용물을 뜯어보았다. 그런데 ‘이건, 이건?’ 사진들이었다. 사진 한 장 한 장씩엔 아연하게도 온양버스터미널에서부터 호텔방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둘의 행적들이 뚜렷한 호텔명과 함께 빠짐없이 찍혀 있었다. “여보, 여보!” 그는 아내를 불렀다. 그걸 보자 아내는, “호호호, 그 사람 우리 결혼삼십주년 기념사진을 제대로 찍어 보냈네요. 고마워라!” 하고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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