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상임이사>

봄바람이 세차다. 선잠을 깬 꽃잎들이 그 화려함을 채 자랑해보지도 못하고 시나브로 떨어져 내린다. 게다가 황사까지 겹쳤다.
아, 안되는데. 나비도 벌도 아직 부르지 못했는데. 그러나 꽃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어떤 꽃들은 바람에 제 꽃가루를 날려 보내고, 어떤 꽃들은 스스로 수분을 하며 꽃잎을 닫는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전략을 세우며 생존을 이어가는 식물들. 그 전략이 놀랍기만 하다.
엊그제 조카에게 용돈을 부쳤더니 '전쟁 일어난다는데 은행으로 보내셨어요?'라는 답변이 왔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전쟁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한반도의 위기일까?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아무도 불안해하거나 동요를 하지 않는 걸까?
북한은 연일 엄포를 놓으며 전쟁에 대한 위협을 하는데, 정작 우리는 불감증을 넘어서 이곳 저곳에서 축제를 열고 전국의 명승지마다 봄꽃을 찾는 상춘객들이 넘쳐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니 이상한 나라들의 이상한 국민들이다.
한쪽에선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듯 강도를 더하면서 일촉즉발 전쟁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한쪽에선 남의 일인 듯 관심이 없다. 주식시장도 그대로이고, 생필품 사재기 현상도 일지 않는다.
정부 역시 그렇다. 북한의 행동을 예의주시한다는 발표는 있지만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당장의 청문회 등 현안적인 정치문제에 쫓겨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상한 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외국인들에게 철수를 부탁하고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대피하라고 위협하더니, 4월15일 김일성 생일을 앞두곤 평양으로 해외사절단의 방문이 이어진단다. 국면전환을 위한 일인지, 숨고르기를 하는 것인지 아무튼 보통 사람들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외언론들은 좋은 뉴스감을 찾아 한국으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
미국의 CNN, CBS, NBC, 일본의 NHK, TBS, TV도쿄를 비롯해 아랍권 알자지라 등 20여 개국 주요 신문 방송 통신사에서 280여명의 특파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한국의 모습을 세계의 안방에 비추며 남북한의 대치를 새로운 이슈처럼 몰아가고 있다. 또 한쪽에선 주한미국 가족이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탈출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비상시 항공기 운영스케줄과 탑승 우선순위, 출국수속 절차를 정하는 등 자국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비계획을 점검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만일 가정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도 이런 일에 대한 대비책이나 준비에 대한 것들을 일러주지 않았다.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휴전상태에 있는 국민이면서도 평상시 교육이 없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대피할 장소는 어디인지, 준비해야할 비상물품의 리스트는 무엇인지, 비상식량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헤어진 가족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은행의 돈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기본적인 매뉴얼조차 없다. 
정말로 서울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진다면 지역민의 최대 90%가 사망할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파괴되고, 경제는 무너진다. 어차피 피난갈 곳도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쟁의 위협에 대한 대비를 못할 바에야 불안감 없이 지금처럼 예쁜 옷 사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놀러다니고 축제를 즐기는 것이 나은 방법인지 모른다. 
그 끔찍했던 6.25 전쟁의 트라우마를 떠올리지 않고 그냥 먼 나라 일처럼 무관심한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발밑을 보라. 작디 작은 냉이꽃이, 제비꽃이, 괭이밥이 고르지 못한 봄날씨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소명을 다 하는지. 풀꽃만도 못한 우리의 전략없음이 부끄럽다.
그러나 전쟁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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