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고구려비'의 고해상도 탁본이 11일 공개됐다


 

 

겅톄화(耿鐵華) 중국 퉁화(通化)사범학원 교수가 국내 일각에서 제기된 '지안 고구려비 가짜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한국고대사학회의 초청으로 방한한 겅 교수는 13일 고려대에서 열리는 한국고대사학회 학술회의 '신출토 지안고구려비 종합 검토'에서 발표할 연구논문 '중국 지안에서 출토된 고구려비의 진위(眞僞) 문제'에서 지안 고구려비가 가짜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중국 초기 도교의 관용적 표현인 '천도자승'(天道自承)이라는 표현이 비석에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 "비석의 '천도'라는 글자는 선진(先秦)시기부터 이미 많이 사용됐고 고구려인들은 일찍부터 한자와 유교경전을 습득했다"며 비석의 위조 가능성을 일축했다.

앞서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 도교가 고구려 말기에 수용된 점을 감안하면 도교의 관용적 표현이 광개토대왕 또는 장수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안 고구려비에 등장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겅 교수는 "고구려인들이 일찍부터 한문과 각종 경전을 습득해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내용이 풍부한 문장을 기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작년 7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지안 고구려비 분석을 위해 중국 당국이 조직한 전문가 연구팀 '지안 고구려비 보호와 연구를 위한 영도 소조'에 참여했다.

지안 고구려비의 중국 문화 연계성도 강조했다.

겅 교수는 고구려가 "석비 건립의 전통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 고대 비석 문화를 차용해" 규수비(圭首碑) 형태의 지안 고구려비를 건립했다고 주장했다.

또 "광개토대왕의 경우 공적이 너무 많아 4각 기둥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광개토왕릉비를 건립했으며 4각 기둥 형태의 비석이 충주 고구려비 등으로 면면히 계승됐다"고 분석했다.

지안 고구려비는 비석의 머리 부분이 삼각형인 규수비로, 비석의 앞 뒷면에 글자를 새긴 2면비다. 규수비는 중국 후한대 이래 유행했다. 반면 광개토대왕비와 충주 고구려비는 모두 비석의 4면에 글자를 새긴 4면비다.

비석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광개토대왕이 부왕인 고국양왕을 위해 건립한 수묘인 연호비라는 견해를 내놨다.

반면 겅 교수와 함께 지안 고구려비 분석에 참여한 쑨런제(孫仁杰) 지안 박물관 연구원은 '지안 고구려비의 판독과 문자비교'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에서 지안 고구려비가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 대에 건립됐다고 주장했다.

쑨 연구원은 비석에 새겨진 총 218자 가운데 166자를 판독했다면서 "비문 6행의 선왕(先聖)은 광개토대왕으로, 장수왕이 부왕의 공적을 기술한 것"으로 파악했다.

겅 교수와 쑨 연구원은 학술회의에서 중국 당국의 지안 고구려비 정식 보고서에 실린 공식판독안 156자를 비롯해 비석의 발견 경위, 조사 과정, 비석의 진위 판정 과정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국내 학자들의 다양한 분석결과도 발표된다.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는 173자에 대한 판독 결과를 소개하고 윤용구 박사는 총 185자의 판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가장 큰 관심거리인 비석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겅 교수를 비롯해 대부분의 발표자가 광개토대왕대에 건립됐다는 주장을 펼 예정이다.

비석의 성격에 대해서는 고구려 역대 왕릉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담은 왕릉 수묘비(守墓碑)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겅테화.여호규.조우연 등), 왕릉 수묘제 시행 선포비라는 분석(이성제)과 수묘제와 관련한 광개토대왕의 교령비(敎令碑)라는 견해(정호섭) 등도 제시된다.

건국설화에 반영된 유학사상(조우연), 종묘제와 결부한 수묘제의 정비 양상(이성제), 비석 주변 마선구 고분군의 왕릉급 고분의 분포 양상(정호섭), 중국 고대 수묘제의 전개 양상(윤재석)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내용도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고대사학회는 "(중국) 현지 연구자와의 협력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지안 고구려비' 1차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겅 교수, 비문의 모사와 고고학적 조사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쑨 연구원을 학술회의에 초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한국과 중국 양국학계가 그동안의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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