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투수' 류현진(26·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빅리그의 마운드만이 아니라 타석에도 적응을 마쳤다.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 선발 투수 겸 9번 타자로 출전해 3타수 3안타 1득점을 기록, 타석에서도 유감없이 방망이 솜씨를 뽐냈다.

배팅 실력이 중요한 다른 야수들에게도 하루 3개의 안타를 때리는 일은 흔치 않다. 하물며 번트만 잘 대도 칭찬받는 투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날 류현진은 그냥 '잘 치는' 수준을 넘어서 팀의 공격 첨병 노릇을 톡톡히 했다.

완전히 허리를 돌리기보다는 들어오는 공에 툭 방망이를 대면서 결대로 밀어치는 타구가 연달아 다저스 공격의 물꼬를 텄다.

첫 타석에 선 3회초에 류현진은 2루타로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장식했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 선발 이언 케네디의 3구째 시속 150㎞ 직구가 높게 형성되자 부드럽게 방망이를 돌려 맞혔다. 이는 우익수 키를 넘어 펜스까지 가는 큼지막한 타구가 됐다.

이달 3일 샌프란시스코와의 첫 경기에서 땅볼을 치고 무성의한 주루를 하다가 홈팬의 야유를 받은 류현진은 이번에는 전력 질주해 2루에 안착했다.

후속타 불발로 홈을 밟지는 못했으나, 이 2루타는 이날 활약의 신호탄이었다.

답답한 타선 탓에 1-0의 아슬아슬한 리드밖에 잡지 못하던 5회초 류현진은 공격의 물꼬를 트는 선봉 역할을 했다.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선 그는 이번에도 케네디의 3구째 직구가 가운데로 몰리자 정확히 받아쳐 중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류현진은 다음 타자 칼 크로퍼드의 투수 땅볼 때 2루에서 포스아웃돼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후 스킵 슈마커와 안드레 이디어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다저스는 3-0으로 다소 여유를 찾았다.

애리조나가 5회말 1점을 따라붙었지만 류현진은 곧장 도망갔다.

6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세 번째 타석을 맞은 류현진은 이번에도 직구를 밀어쳐 우전 안타를 만들었다.

이후 크로퍼드의 2루타, 슈마커의 볼넷에 이어 맷 켐프의 좌전 적시타가 터지면서 데뷔 첫 득점도 기록했다.

류현진을 시작으로 타선이 폭발한 다저스는 6회 2사 후에만 3점을 따내며 승리에 바짝 다가섰다.

5∼6회 대량 득점의 포문을 류현진이 연 것이다.

이날의 맹타로 류현진의 시즌 타율은 무려 0.429로 치솟았다.

류현진의 가족을 비롯한 관중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눈에 뛰는 등 이날 류현진의 '불방망이'에 체이스필드 전체가 들썩거렸다.

이날 맹타로 류현진은 다저스에서 2009년 8월16일 랜디 울프 이후 처음으로 한 경기에 3안타를 친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3타수 3안타를 때린 다저스 투수로는 1999년 카를로스 페레스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인 투수 가운데 3안타를 때린 것은 은퇴한 박찬호 이후 두 번째다.

타격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시절이던 2006년 5월16일 3타수3안타 2타점을 올리며 '불방망이'를 휘두른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박찬호에게 3안타를 안긴 상대팀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였다. 경기장도 체이스필드로 똑같았다.

야구 센스가 뛰어난 대부분의 에이스 투수들이 그렇듯 류현진도 학생 시절 투구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재능을 보였다.

오른손 타석에 서는 그는 왼손 동산고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하며 3년간 통산 0.295의 타율을 기록했다.

특히 3학년 때는 청룡기대회 본선 4경기에서 타율 0.389를 때리기도 했다.

프로 입단 후에는 타석에 선 적이 없지만, 2010년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 특별 이벤트로 참가, 좌월 홈런을 때리는 등 여전히 날카로운 배팅을 자랑한 바 있다.

이렇듯 기본적인 감각이 좋은 만큼 류현진이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 타석에서도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하리라는 예상은 많았다.

그러나 우선 과제는 마운드 적응인 만큼 이렇게 빨리 폭발적인 타격을 보여주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9번 타순에 들어가는 투수가 좋은 타격을 보여주면 바로 상위 타순으로 흐름이 이어져 팀의 공격에 큰 도움이 된다.

다저스에서는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지난해 0.207의 타율로 만만치 않은 배팅 실력을 과시했다. 커쇼는 올 시즌 개막전에서 결승 홈런을 때리는 '원맨쇼'를 펼치기도 했다.

팀의 2선발로 자리 잡아가는 류현진이 타격에서도 커쇼와 함께 '원·투 펀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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