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문득 그 할머니들 소식이 궁금해진다. 지난 3월 4일 새 학기가 시작되던 입학식 날, 예쁜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입학식장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7명의 입학생 할머니들 말이다. 손자나 증손자뻘 되는 선배들 앞에서 1학년이 된 할머니들의 조금은 쑥스러운듯하면서도 희망에 찬 밝은 얼굴들이 떠올라 공연히 웃음이 나온다.
 
  이제 입학한지도 한 달이 지났으니 학교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테지만 딸 같은 담임선생님 앞에서 학생노릇하면서 손자뻘 되는 선배들 앞에서 1학년 학생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기가 참말 쉽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동안 학교는 잘 다니실까? 농사철이 다가오는데 일이 바쁘다며 결석하는 이는 없는지, 공부가 너무 어렵다며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적게는 60살에서 많게는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이니 젊은 담임선생님의 처신은 또 얼마나 어렵겠는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이고, 난생처음 그리는 그림이라 잘 못 그리겠네.” 할머니들의 푸념하는 소리와
  “할머니, 쑥스러워 마시고 제 얼굴 잘 보고 다시 한 번 그려 보세요” 라며 격려하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한 교실 풍경이 떠올라 또 웃음이 나온다.
 
   경남 하동군 고전면 고전초등학교 1학년 교실의 얘기다. 이 학교는 올해 할머니 7명을 1학년 입학생으로 맞았다. 1학년에 입학 할 어린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학교는 올해 신입생 없는 학교를 면했지만 할머니들만 입학한 전국 유일의 초등학교가 되었다. 취학아동이 줄고 있는 시골학교가 노인들의 새로운 배움터가 되었으니 농촌의 고령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배 재학생 27명의 축하를 받으며 입학식을 했고, 고전면장학회가 주는 장학금 10만원도 받았다니 기쁜 일이지만 그동안 못 배운 한이 얼마나 컸을까 알만하다. 6.25 전후의 가난 속에서 학교를 다닐 형편이 못 되었을 테고 글 모르는 한을 안고 평생을 살았을 그 불편함과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입학한 남향순(60)할머니의 딸 정정순(43)씨라고 한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하여 배우지 못한 한을 품고 사시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올해 초 학교를 찾아 입학상담을 했단다. 하지만 올해 입학생이 없어 혼자 다니기 어렵다며 내년에 다른 어르신과 함께 입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딸 정씨는 단념하지 않고 동네 어르신들 6명을 설득하여 어머니와 함께 입학하게 되었단다. 법적으로 초등학교 입학 자격에 연령제한이 없다니 천만다행이다.

  평생 한글을 모르거나 간신히 이름 석 자를 쓰는 정도의 할머니들이 새롭게 공부를 한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을 일이지만 한자 한자 글자를 알게 되고 새롭게 배움의 길을 걷는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일까. 한 동네 할머니들끼리 한 반 학생이 되어 함께 어울려 공부하며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을 테니 한참 희망에 부풀어 있을 게 아닌가.
 
  담임선생님 역시 할머니들 가르치기가 쉽지는 않을 터이지만 그 분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다는 보람으로 기쁘게 수업에 임할 것이다. 할머니들에게 맞는 별도의 맞춤형 교과과정을 개발하여 가르치고 방과 후에는 사물놀이 같은 수업도 할 계획이라니 반가운 일이다.
 
   79세인 초고령 할머니는 “배움의 길을 열어 준 학교에 감사하고 초등학교 과정을 꼭 마치겠다.” 고 했고 60세인 남 할머니는 “늦게나마 배움의 길이 열린 만큼 열심히 공부해 중학교에도 진학할 생각”이라고 각오도 대단하다.

   어린이가 희망인데 입학할 어린이가 없는 농촌의 현실이 씁쓸하긴 하지만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할머니들이 1학년 교실을 채워 빈 교실을 면했으니 고맙기만 하다.
   고전초등학교 1학년 할머니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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