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국정최고책임자가 바뀌면 으레 새로운 국정지표를 제시하거나 기존의 국정지표와 그 내용이 같더라도 용어 또는 우선순위를 변경하여 제시한다. 문화(culture)를 최상위개념으로 가치(value)-규범(norm)- 법(law)- 제도(institution) 등의 하위개념이, 이상(ideal)을 최상위개념으로 목적(objective)-목표(goal)-행동계획(action plan:time schedule) 등이 하나의 개념체계를 이루듯이 국정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국정지표도 개념적 위계를 비롯하여  개념적 요건에 부합되게 작성되어야 한다. 국정지표는 국가의 이념(ideology)-정체성(identity)-지표(indicator:orientation)-목표(goal)-행동계획(action plan:road map) 등을 하위개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제18대 박근혜정부는 ⅰ)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ⅱ)맞춤형 고용복지, ⅲ)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ⅳ)안전과 통합의 사회, ⅴ)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시대와 환경에 맞는 지표를 설정하기 위해서 철저한 검토와 연구 끝에 내 놓은 지표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지표들을 보면서 국정지표로서의 요건이라 할 수 있는 개념체계나 맥락성, 정체성, 적합성 등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지울 수 없다. 위의 5대 국정제시어들은 분명 국정의 진로에 대한 지표이다. 구체성과 실제성을 요건으로 하는 목표가 아니라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의 국정 진로에 관한 지표이다. 그런데 언론에는 지표의 하위개념인 국정목표로 보도되고 있다. 지표들은 개념체계를 갖추고 국가의 이념과 맥락을 같이하면서 정체성 등을 확보하여야 한다. 한국의 이념은 홍익인간이고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이다. 지표들은 이러한 이념과 정체성을 기조로 하여 국민의 행복지수 증대의 내용을 갖추되 중복성과 모호성을 배제한 적합성 등을 구비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일자리 중심과 고용복지는 같은 범주인데도 각각의 지표로 제시하였고 문화가 있는 삶이란 ‘문화는 연극이나 영화 등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공유(共有)하는 사고방식, 생활양식, 가치관 등을 통틀어 말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지표로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용어인데도 상징적 의미만 의식한 듯 그대로 사용하였다.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이라는 지표 또한 한국민이 준비하고 노력하여야할 명확한 내용이 결여된 것이다. 그리고 국정분야는 정치를 비롯하여 행정,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환경, 사법 등 여러분야가 존재하는데 유독 경제와 교육, 사회분야만 제시하였다.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지표선정 요건을 망각한 것이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 국가형성의 정신이라면 삶의 질 향상이나 복지는 국민행복의 바로미터이다. 그러므로 이 두 용어는 최상위개념에 자리 잡게 하여야 하고 여타의 국정의 지표들은 이의 틀 안에서 형해화(形骸化) 된 것이어야 한다. 덧붙여서 ‘미래’와 ‘창조’라는 용어의 용도에 대하여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미래는 현재의 순간(찰라)이후의 모든 시간을 말한다는 점에서, 창조는 발명과 동의어로서 변화지향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격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정부의‘혁신’, 이 전 대통령정부의 ‘녹색’의 구호에 이어 박근혜정부의 ‘창조’는 참신성의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창조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단어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개념의 본질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미래는 어떤 모양이나 내용으로든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전개되는 것이다. 때문에 굳이 창조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 굳이 사용하겠다면 국정의 모든 분야에 삽입시켜야 한다. 이런 논리에서 안전을 위한 행정부라는 의미로 인식될 수 있는 안전행정부라는 부처명이나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부처명도 잘못된 것이다. 안전행정부는 외무부와 짝이 되도록 내무부로, 미래창조과학부는 간이법칙에 맞게 과학부로 명명하면 된다.
모든 길이 종점으로 통하듯 모든 국정지표들은 홍익인간과 삶의 질 내지 복지향상을 목적지로 한다. 국정지표는 최상위와 최하위가 하나의 혈관으로 연결되듯 유기체적으로, 낭비와 중복의 극소화를 도모할 수 있는 체제분석적 접근과 노력을 통하여 산출되어야 한다.
국정의 지표는 국정의 좌표라는 점에서 건국의 이념과 정체성 구현 의지가 녹아 있는 것이어야 하고 지표로서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국민들이 희망과 기대 속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국정지표로서의 생명성을 극대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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