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지난 3월 21일 국내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 재판이 방송으로 생중계되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개정한 ‘대법원2010도14328 국외이송약취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케이블 채널인 한국정책방송(KTV)을 통해 방송된 것이다. 같은 시간 대법원 홈페이지와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도 재판과정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법정 안에 4대의 방송용 카메라에 지미집까지 설치되었다. 법대 위에 앉은 대법관들은 언제 클로즈업 될지 몰라 한 순간도 표정과 자세를 풀 수 없었다. 검사와 변호인의 변론은 물론 참고인들의 진술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재판은 1시간 20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중요하고 국민적인 관심이 쏠리는 사건이라도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던 마지막 성역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전격적으로 재판중계를 결정한 대법원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투명하고 열린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를 증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이번 일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공정한 재판의 진행과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해서 재판은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19세기 이후 민주적 사법절차의 기본원리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09조에서 공개재판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다만 일반 시민의 직접방청을 의미하던 공개재판 개념이 오늘날 미디어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TV를 통한 간접적인 공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물론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를 통해 재판이 공개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비롯한 인격권이 침해될 수가 있다. 또 법정 촬영으로 인해 재판의 공정한 진행이나 실체적 진실발견이 방해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들은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이로 인한 손실보다는 재판방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재판방송은 사법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화하고 법정심리의 철저화를 통해 재판의 공정성을 실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가 높아지는 동시에 국민들에게도 다양한 법률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범죄예방과 법질서 확립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법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재판의 방송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해왔다. 이들 국가들은 재판방송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절차와 방법을 마련하여 이미 재판방송을 시작했거나 본격적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만 일부 간헐적 논의가 있었을 뿐 사법당국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1월 실제 재판의 문제점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한 후 논란이 확산되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방송의 도입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불과 1년여 만에 대법원 재판에 대한 중계방송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재판방송은 열린 사법행정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법원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본격적인 재판방송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할 수는 없다. 앞으로 재판방송 도입시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이번 재판중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피고인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재판이라 인격권 침해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지만 카메라의 존재 자체가 재판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토대로 재판방송의 대상과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방송녹화 및 편집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어떤 채널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공개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이번 중계방송이 재판방송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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