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본사 상임이사)

계절의 청춘’ 오월로 달리는 햇살이 향기롭다.괜시리 설레고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문득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사를 곱씹을 필요없이 그저 흥겨운 멜로디도 좋지만, 바쁜 세태 속에서 잊고 지내던 순수의 감성과 기억의 편린들을 자극하는 노랫말 좋은 것들이 더 와닿는다.
요즘 조용필과 싸이 열풍이 대단하다.
‘강남스타일’에 이어 ‘젠틀맨’으로 세계를 열광시키는 폭발력. 이것이 싸이의 힘이라고 한다.
10년만에 귀환한 조용필은 ‘바운스’ 한 곡으로 그런 싸이의 힘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역시 ‘가왕(歌王)’이라 부를만하다.
이것이 대중문화다.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예술의 범주에 있으면서도, 예술계의 이단아로 매도돼 온 한을 풀기라도 하듯 광열(狂熱)을 내뿜는다.
스위스 출신의 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Henri-Frederic Amiel)은 예술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예술이란 사람들의 정신 속에 존재한 비밀스러운 것들이 드러나고, 어렴풋했던 것이 분명해지며,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지고, 우연이었던 것이 필연이 되는 것과 같은 사람에 대한 작용을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든다’고.
누구나 한 번 쯤은 공감했을 법한 말이다.
실연을 당했을 때 이승환의 ‘그대가 그대를’이란 노래에 눈물 흘리고,  둘다섯의 ‘긴머리 소녀’를 들을 때면 어렴풋한 추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현실에 절망하고 좌절할 때면 김광석의 ‘일어나’ 한 곡이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주곤 한다.
두 가수에게서도 이같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용필과 싸이’ 신드롬은 동일한 것일까.
나는 선명한 차이를 느낀다.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이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먼저 ‘싸이 열풍’은 유희(遊戱)다.
아무리 들어봐도 아미엘의 정의를 적용할 수 없는, 그저 신나는 노래일 뿐이다.
시각적 흥미와 청각적 즐거움을 빼면 가슴에 남는 것이 없다.
물론 감동이나 서정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해서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 대중문화가 갖는 속성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이윤극대화를 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대중문화를 소유함으로써,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이 과정이 마케팅이란 기법을 통해 시대의 상징으로 포장되고, 유행으로 전파된다.
면밀히 접근하면 문화의 본질과는 이질적이다.
문화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공유?전달되는 행동 양식’을 일컫는다.
싸이는 “나는 대중가수다. 대중이 네임텍을 달아주는 대중의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할일을 할 뿐이고 그로 인해 얻는 재미와 쾌감 등으로 사는 주의이기 때문에 어떻게 봐도 상관 안한다”고 말한다.
이는 문화의 본질을 부정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대중문화 영역에 속한 가수라면, 자신의 노래가 사회 구성원들의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행동양식을 전파한다는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지녀야 마땅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재미와 쾌감을 얻는 것에 만족한다면, 대중의 지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조용필의 말을 들어보면 싸이의 생각이 얼마나 저급하고 잘못된 것인지 명쾌해진다.
조용필은 10년만에 신곡을 내면서 “음악의 깊이보다는 그냥 편안한 것을 찾았다. 노래를 들으시면 알겠지만 때로는 절제하고, 때로는 내뱉고, 때로는 움츠러드는 작업을 스스로 많이 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자신을 내려놓고 편안한 것을 찾기 위해 얼마나 절제하고 얼마나 절규하고 얼마나 움츠러 들었을까.
결코 편안한 과정이 아니었을 터.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에는 이르지 못한다 해도 가까이 다가설 만큼의 산고(産苦)였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는 가슴을 파고드는 전율과 감동과 메시지가 느껴진다. 기억을 떠올리고, 사람들을 추억하고, 희망을 품는다.
아미엘의 정의에 맞아떨어진다.
두 가수의 노랫말을 들어보라. 가만히 눈감고. 가슴에 전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조용필의 ‘꿈’ 중에서)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그런 반전 있는 여자’(싸이의 ‘강남스타일’ 중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할 것이다. 어느 노래가 사유(思惟)의 여운을 주는지.
우리네 정치나, 경제, 문화, 언론은 누굴 닮았을까.
나는 조용필이길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싸이를 닮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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