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취재부 부국장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은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정치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이젠 제도권 정치인이 된 한 사람이 지난해 2월 자신의 이름(현재는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을 딴 비영리재단 설립 기자회견을 통해 한 말이다.
재단 설립 기자회견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을 새삼 들게 한다.
굳이 속내를 드러내고 싶었다면, 재단 설립 기자회견이 아닌 다른 기회를 택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박찬호(야구) 선수나, 최경주(골프) 선수, 박지성(축구) 선수, 조용필(가수)씨, 김장훈(가수)씨 등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요란을 떨며 재단 설립 기자회견을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재단 설립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라는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가 만든 재단 홈페이지를 보면 ‘출연자의 편지’를 통해 “사회로부터 받은 과분한 은혜와 격려를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작은 결심의 실천”이라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안철수 국회의원’ 얘기다.
“정치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던 그의 속내가 마침내 실현되게 됐으니, 축하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그럴 맘은 없지만.
언론이 특정 정치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의 행보를 통해 그가 ‘새정치’를 주창할 자격도 없거니와 ‘기부문화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사회가 가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안 의원이 4.24 재보선 후보로 등록하면서 신고한 재산은 1171억원에 달한다.
나로선,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로선 그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현실적으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1171만원이면 모를까.
그의 재산이 공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내역을 살펴보면 그가 설립한 안랩 주식 236만주 가치가 1056억원으로 평가됐다.
주택 전세권은 12억원이고, 현금 예금액은 무려 102억6000만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재산은 947억원에 불과(?)하다는 게 안 의원 측의 설명이다.
안랩 주식 236만주 중 50만주는 그가 설립한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에 출연한 신탁주식이기 때문.
안 의원은 지난 대선 출마 과정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안랩 주식 372만주 중 절반인 186만주를 재단에 출연했고, 아직 성실법인 등록이 되지 않은 탓에 50만주가 신탁관리 중이다.
자신의 재산을 기부한 것은 참으로 높게 평가할 일이지만, 하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시기에 기부를 했다는 점이 순수성과 자발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2011년 세간의 이슈가 됐던 ‘청춘콘서트’를 진행할 당시 안 의원은 “대학 등록금 문제와 취업·진로 고민 등으로 불안한 청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차라리 그때 재단을 설립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순수성과 자발성도 인정받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안 의원이 그의 말대로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왔던” 기부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는지가 궁금해진다.
그가 지난해(왜 하필 이때일까) 펴낸 ‘안철수의 생각’ 중에는 ‘기업을 경영할 때도 돈만 버는 기업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는 대목이 있다.
그가 안랩 대표이사로 있던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 안랩의 전체 매출은 1495억원으로, 순이익만 261억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같은 기간 그가 이곳저곳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내놓은 기부금은 모두 3200만원. 3200만원!
그가 벌어들인 순수익의 0.12%에 불과한 초라한 금액이다.
그의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기준과,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왔던’ 생각을 돈으로 환산하면 3200만원이나 다름없다.
그의 기준과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일화 하나.
그가 이사로 참여했던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을 지낸 박상증 목사는 “이사들에게 1000만원씩의 후원금을 출연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사 중에서 유일하게 후원금을 내지 않은 사람이 안 의원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의 설립 취지는 ‘우리 사회에 올바른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안 의원이 설립한 재단의 설립 취지와 부합된다.
그 스스로 취지에 공감해 이사로 참여하고도 후원금 출연에 인색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치를 택한 이후에서야 선뜻 ‘통큰 기부’를 한 까닭은 또 무엇일까.
재단 설립 과정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재산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안 의원.
그 발언의 이면에는 “대통령을 만들어주면 기부하겠다”거나 “대통령이 안되면 기부하지 않겠다”는 유권자들에 대한 ‘정치적 협박’이 숨어 있었을 터.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왔던 생각’은 재산의 사회 환원이 아니라, ‘정치인 안철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새정치’에 대한 기대나, 신뢰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저 숱하게 출현했다 사라지는 또 한 사람의 ‘정치인’,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또 한 사람이 생겨났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불행하게도 우린 이런 정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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