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됫집의 양주(兩主)는 부부간 나이 차이가 12살이나 된다. 그러니까 띠 동갑이다. 홍만영감이 그 만큼 더 많다. 지금도 색시가 신랑보다 12살이나 연하라면 그 신랑은 도둑놈이라도 된 양 여론이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데 됫집 양주가 부부의 연을 맺었을 당시는 그야말로 옛날이니 그 시절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흔히 색시 쪽이 두세 살 연상이었을 때니까. 이건 운명적인 연 때문이다.
 엄마는 근녀가 10살 때, 오른 쪽 다리를 못 쓰는 데다 실어증인 상태로, 근녀가 외할머니와 살고 있는 친정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모녀 3대가 같이 살게 됐는데 할머니 살아생전까지는 할머니가 동네 집 허드렛일로 살림을 근근 꾸려나갔다. “근녀야, 이 할미 없으믄 니 엄마 니가 챙겨야 하는겨. 이 할미 무항정 사는 거 아녀. 곧 죽을겨.” 그러더니 외할머닌 정말로 1년을 못 넘겼다. 그러니 이제 당장 근녀가 엄마를 책임지는 가장이 돼 살림을 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근녀 나이 14살이다. 근녀는, 엄마가 왜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인 불구가 돼서 두고 간 어린 딸이 있는 친정으로 돌아왔는지를 알지 못한다. 생전의 외할머니한테 물은 적도 없고,  동네사람들을 비롯한 어느 누구를 통해서 들은 적도 없다. 그냥, 엄마는 원래부터 이렇게 불구의 몸이로구나, 나도 엄마가 있구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런 엄마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그릇장수다. 처음엔 동네에 들어온 사기그릇장수여인을 따라다녔다. 사기로 된 사발, 대접, 접시, 종지 등을 꾸린 보따리를 이고 시골동네를 누비는데 사기그릇이고 어린나이이니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가. 그 대가로 엄마가 연명할 만큼의 보리양식을 얻고 자신은 입만 얻어먹었다. 그렇게 한 1년여를 하니, “자, 이건 네 것이다. 네 수단껏 팔아 네가 가져라!” 하며 주인이 보따리를 하나 챙겨 주었다  하여 이제는 내 것으로 이문을 챙겨 나가는데 하루는 불쑥 주인이 또 말을 꺼낸다. “동냥은 혼자 가는 거란다.” “예?” “무엇을 얻는 일에 여럿이 다니면 몫이 적어지게 마련이야 그러니 인제 너도 니 혼자 해보란 말이다.” 이래서 17살에 독립을 했는데 이때부터는 인근읍내의 장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러던 어느 날, 그릇보따리를 이고 장으로 가다가 고갯마루까지 올라와 쉬어 가려고 보따리를 내려놓으려는데 무거워 도저히 두 팔로 들어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쩔쩔매고 있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빈 지게 진 남정네가 이걸 보고 얼른 뛰어 와 도와주는 게 아닌가. “아저씨, 고마워유.” “나 아저씨 아녀 총각여.” 근녀는 무안해 얼굴이 빨개졌다. “괜찮여, 아저씨로 보일 테니께. 그런데 뭐기 그리 무거워?” “사기그릇이유. 나 그릇장수여유.” “아 그려, 오늘 장보러 가는구먼. 난 나무장수여. 장터에선 날 되내기장수라구 햐.” “되내기유?” “팔려구 보기 좋게 다시 묶은 땔나무 단을 ‘되내기’ 라구 하거든. 아침에 일찍 가서 팔구 지금 오는 길이여.” 그 총각아저씨는 근녀가 다시 보따리를 머리에 일 때 번쩍 들어 도아주고는 반대편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이후 이곳 장날이 되면 이 총각아저씬 근녀를 기다렸다가 보따리를 내리고 이는 걸 도와주었고, 그러는 사이 그의 이름이 홍만이라는 것과 둘이 띠 동갑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홍만도 사고무친 외로운 처지라 급기야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신이야 넋이야 하며 그간 서로가 마음속에 가두어 놓았던 연정을 털어 놓는 데까지 이르러 부부의 연을 맺었다.
 홍만은 근녀의 집에 들어와 살았다. 그러니까 근녀엄마 쪽에선 데릴사위다. 둘은 각각의 일을 억척으로 이어갔다. 세 식구 양식을 그날그날 한 되 한 되 팔아먹는 됫박생활을 하며 절약했다. 그래서 지금의 동네사람들은 이들 집의 별호가 ‘됫집’ 이 된 것은 이에서 비롯됐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됫집’ 내력의 진실은 딴 데 있다. ‘근녀엄마가 되모시(이혼하고 다시 처녀행세를 하는 여자)로 총각한테 처녀시집인 양 갔다가 들통이 나 시집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불구된 몸으로 친정으로 쫓겨 온 사연, 그래서 근녀가 그 되모시 딸이라는 것, 또 홍만이가 땔나무 파는 이른바 되내기장수라는 것. 이 ‘되모시’와 ‘되내기’의 집이라 하여 그 각각의 머리 자 ‘되’가 붙어 ‘됫집’이 됐다는 것‘ 을 아는 사람은 이제 한 사람밖에 없다. 이제는 92세로 생존해 있는 그래서 동네에서 가장 어른이 돼 있는 한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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