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캐나다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이 휴가차 나왔다. 작년 12월 결혼식을 마치고 들어간 뒤 다섯 달 만이다. 그동안 아들 내외의 결혼 사진을 거실에 두고 보며 화사하고 해맑은 모습에 많은 위안을 받아왔다. 그래도 아들 내외가 보고 싶은 건 여전한데 아들이 결혼하고 나니 전보다 훨씬 신경이 덜 쓰인다. 며느리는 며칠 뒤 들어올 예정인데 일본서 있을 결혼식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5월 중순 일본서 며느리 친구들이 모여 결혼식을 대신한 파티를 한단다. 우리와는 풍습이 달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친구들을 한 오십 명 정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며 모두 특이한 복장을 하고 파티를 한다고 한다. 아들은 뱀파이어 복장이고 며느리는 경찰 복장을 한단다. 호기심에 가보고 싶지만 부모들은 참석치 않는다고 해 가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전 보다 훨씬 평화로워 보인다. 저녁을 차려주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전에는 입이 짧아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편식을 많이 했다. 요즘은 아무 반찬이나 잘 먹고 식성이 훨씬 좋아졌다. 심지어 아들은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 아빠 삼계탕을 해 드리겠다고 한다. 어쩌다 요리가 취미가 된 아들은 오기 전에도 김치찌개를 해서 먹고 왔다고 한다.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까칠하고 피곤하게 굴던 아들이 며느리와 사귀면서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 그렇게 부드러워 질 수가 없고 알뜰하게 변했다. 한국에 오면 우리 내외가 돈 쓰는 걸 보고 늘 아껴쓰시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 아빠가 일찍 은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푼돈을 아낄 줄 모르는 우리 내외는 아들이 하는 말에 뜨끔해지며 우리 소비습관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들이 이렇게 알뜰하게 된 것도 모두 며느리 덕이다. 며느리는 전형적인 일본인답게 알뜰하고 검소하기가 이를 데 없다. 캐나다에서도 시금치 한 단에 50센트(한국돈 오백 원 정도) 더 싼 곳을 찾아 갈 정도라고 한다. 처음엔 아들과 그런 일로 다투기도 했으나 요즘은 서로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 내외는 둘이 어찌나 재미있게 지내는지 옆에서 보면 나조차 행복해진다. 참 보기가 좋다. 늘 밝고 싹싹한 며느리와 살아서 그런지 아들 표정도 무척  밝아지고 평화로워졌다. 전에는 어쩐지 고독하고 씨니컬한 모습이어서 가슴 한켠이 아릿했는데 어느새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그리보면 아들 내외는 천생연분이 아닌가 싶다.
 아들 짐을 풀다 보니 옷가지를 개 온 것이 그렇게 정갈하고 깔끔할 수가 없다. 나는 여자라도 털털해 자잘한 일을 할 때 대충대충 거칠게 하는데 아들은 나와 정반대다. 아들이 엔지니어이므로 원래 꼼꼼한 기질이 있는데다가 며느리에게 보고 배운 영향도 있을 것이다. 아들은 직장 생활을 한지 오년이 넘었는데 전문 엔지니어다. 아들이 다니는 회사는 캐나다에서 몇째 안가는 건설회사인데 주로 댐이나 교량 등 대형물을 짓는다고 한다. 아들이 처음 회사 들어가 시작한 일이 어느새 결실을 맺어 밴쿠버에서 차로 8시간 걸리는 트레일이라는 곳에 댐을 짓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현장근무를 하며 아들이 해온 일의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언젠가 아들과 나이애가라 폭포에 간 적이 있는데 아들은 주변에 있는 수력 발전소엘 혼자 다녀 오기도 했다. 큰 교량이나 댐을 보면 요즘은 예사로 보이지가 않는다. 아들이 그런 일을 하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관광지에서 큰 교량을 보면 아들은 교량 설치하는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아들이 집에 오면 우리 내외는 들떠 잠을 못 이룬다. 오랜만에 만난 큰애와 회포를 푸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들은 양념통닭을 좋아해 도착하자마자 늘 시켜 먹는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양념통닭이라고 한다. 애완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큰애는 집에서 키우는 말티즈 두 마리와도 잘 논다. 큰 말티즈인 천사는 지난 번 아들이 와 사주고 간 것이다. 거의 성견이 된 천사는 아들을 알아보는 듯 잠시도 떨어지지를 않는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데다 아들이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걸 잘 아는 눈치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 덕에 우리 집은 모처럼 왁자지껄하다. 우리 내외는 오랜만에 가족간의 정을 새삼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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